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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판권 교수님] 파계사의 소나무: 운명과 숙명의 세레나데

[강판권 교수님] 파계사의 소나무: 운명과 숙명의 세레나데

by 강판권 교수님 2019.08.19

운명은 자신의 의지대로 뭔가를 바꿀 수 있지만 숙명은 바꿀 수 없다. 그래서 인간의 삶은 운명과 숙명 사이에서 이루어진다. 살면서 숙명처럼 다가오는 것들이 적지 않다. 파계사는 영조의 탄생 설화가 전하는 사찰이자 성철 스님이 계셨던 성전암이 있는 곳이다. 더욱이 나의 운명을 바꾼 사찰이기도 하다. 나는 대구시 동구 팔공산 자락에 위치한 파계사 소나무의 삶에서 운명과 숙명의 관계를 관찰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파계사는 팔공산 자락의 산세가 아주 깊어서 계곡이 깊다. 그래서 종종 계곡의 물이 홍수를 일으켜 많은 피해가 발생했다. 파계사와 파계사의 누인 진동루는 모두 계곡의 물을 잡고 누른다는 뜻이다. 파계사 입구에 연못을 조성한 것도 같은 이유다. 그러나 파계사는 계곡이 깊은 탓에 차도만 있고, 사람이 편하게 다닐 수 있는 인도가 없다. 일주문 오른 편에 파계사로 가는 산길이 있지만 스님과 일부 등산객만 이용할 뿐이다.
팔공산 자락에는 소나무가 많이 살고 있지만 파계사 부도 주변의 소나무는 아주 멋스럽고 아름답다. 그러나 사찰 입구의 도로와 부도 앞의 길을 만들면서 이곳 소나무들의 터전은 아주 위태롭다. 특히 부도 앞 길 끝의 소나무 중 나이가 200살이 넘는 소나무의 삶이 최근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았다. 나는 오래전부터 이 소나무에 큰 관심을 갖고 파계사에 갈 때마다 인사를 올렸다. 이 소나무는 파계사에서 길을 만들면서 15도 정도 기운 채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작년 봄에 내린 눈 탓에 가지가 부러지는 등 몸이 많이 상했을 뿐 아니라 몸의 기울기도 심해졌다. 그래서 지자체에서 소나무가 넘어지지 않도록 외이어로프로 소나무와 마주한 다른 소나무와 연결했다.
나는 넘어지기 직전의 소나무와 이웃한 소나무가 끈으로 묶어진 순간을 운명과 숙명이라 부른다. 넘어지려는 소나무는 이웃한 소나무 덕분에 생명을 연장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얻었지만 이웃한 소나무는 넘어지려는 소나무 탓에 생명을 단축해야 하는 불행한 순간을 맞았다. 소나무의 이 같은 삶은 소나무 자신들은 말할 것도 없고 인간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다. 특히 와이어로프에 묶인 소나무의 삶은 소나무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강요로 생긴 일이었다. 그러나 소나무들은 인간의 이러한 강요에서 거의 벗어날 수 없다. 그래서 지금 파계사 부도 옆의 끈으로 묶어진 소나무들은 서로 숙명처럼 살아가야 한다.
파계사 부도 옆 소나무처럼 살다 보면 운명이 숙명처럼 다가오는 경우가 있다. 운명이 숙명으로 바뀌는 것은 결코 우연하게 일어나지 않는다. 소나무의 숙명은 서로 이웃해서 살고 있었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넘어지려는 소나무 옆에는 다른 소나무들도 많이 살고 있지만 유독 두 그루의 소나무가 선택된 것은 넘어지려는 소나무를 지탱하기에 가장 적합한 위치에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 같은 상황이 반드시 불행한 것만도 아니다. 숙명으로 받아들인다면 오히려 이전의 삶보다 행복할지도 모른다. 피할 수 없다면 온전히 받아들여야만 행복하게 살 수 있다. 나는 차나뭇과의 차나무를 통해 숙명 같은 사람을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