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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섭 시인님] 보성소리, 4대 맥 잇다

[이규섭 시인님] 보성소리, 4대 맥 잇다

by 이규섭 시인님 2020.09.25

“서편제의 구성짐과 동편제와 중고제의 웅건함을 가미한 웅혼하고 섬세한 소리입니다” ‘보성소리’의 특징을 한마디로 응축한 정회천 전북대학교 국악과 교수(고수·가야금연주가)의 정의다.
정 교수의 동생 정회석(57)씨가 지난 18일 김영자(69) 씨와 함께 국가 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심청가’ 보유자로 지정됐다. 인간문화재로 국창 반열에 올랐다. 심청가는 2017년 성창순 전 보유자 별세 이후 보유자가 없었다.
26년 전, 회석씨가 형의 북장단에 맞춰 부른 수궁가 중 ‘약성가’ 한 대목을 혼자서 듣는 귀 호강을 누렸다. ‘국악의 해’(1994년) ‘소리의 맥’-명인·명창의 고향을 찾아서’를 취재하면서다.
정회천 교수의 전주 자택을 취재차 방문하던 날은 그의 부친 정권진 명창(1927∼1986)의 기일(忌日) 이어서 가족들이 모여 제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3형제 부부 모두 국악인이다. 정 교수의 부인은 가야금 연주가, 동생 회완씨 부부는 대금 연주가와 한국무용가, 막내 회석 씨 아내는 해금 연주자다.
판소리는 스승이 제자를 앞에 앉히고 일대일로 사설과 음, 장단을 잡아 주는 구두 전승 예술이다. 스승에 따라 ‘바디’라는 악파(樂派)가 형성되어 있다.
보성소리는 서편제의 창시자로 알려진 박유전 명창(1835~1906)이 그 뿌리다. 보성 출신 정재근은 박유전으로부터 판소리를 배웠고 조카 송계(松溪) 정응민 명창(1896∼1963)에게 이어졌다. 송계가 보성소리를 정립했다. 그의 아들 정권진 명창은 심청가 초대 보유자다. 국악예술학교 창악강사로 후진 양성과 함께 보성소리를 다졌다. 정회석은 아버지 정권진 명창에게 어릴 때부터 보성소리를 자장가처럼 들으며 자랐다. 그는 “보성소리의 원형인 고제 창법을 잘 구사하면서 낮은 소리보다 더 낮은 중하성(重下聲)이 풍부하다”는 평을 듣는다.
국악의 해에 정응민 명창의 고향인 보성군 회천면 도강마을을 조상현 명창과 함께 찾아갔다. 조 명창은 송계로부터 심청가, 수궁가, 춘향가를 배운 보성소리 전수자다. 도강마을은 봇재 넘어 차 밭이 녹색의 바다로 일렁이는 곳이다.
정응민 집터에는 송계 초당과 1989년에 세운 북 형상의 예적비가 있다. 조 명창은 감회가 깊은 듯 “이 자리가 본채, 저쪽이 사랑채, 부엌 옆에 디딜방아, 정낭이 대문 오른쪽 끝에 있었다”며 흔적조차 없는 집 안팎을 설명했다.
세월의 강을 건너 훗날 다시 찾은 도강마을은 산전벽해다. 보성군이 조성한 ‘서편제 테마공원’엔 판소리 전시관, 판소리 전수교육관, 생활관 등이 들어섰다. 복원한 정응민 생가는 번듯한 기와집으로 바뀌어 원형과는 거리가 멀다.
판소리는 2003년 유네스코 ‘인류구전 및 세계무형유산걸작’으로 선정되어 세계무형유산으로 지정됐으나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져 간다. 국악의 보존과 창조적 계승을 목적으로 편성된 ‘국악한마당’(KBS1 TV 토 12시 20분) 시청률은 2%에도 못 미친다. 방탄소년단(BTS)이 빌보드 차트 1위에 오르고, 트롯 열풍이 브라운관을 휩쓰는데 국립국악원의 정기 공연마저 코로나가 삼켜버려 더 씁쓸하고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