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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섭 시인님] 옛날 소들은 행복했다

[이규섭 시인님] 옛날 소들은 행복했다

by 이규섭 시인님 2021.01.22

우리나라에서 가장 행복한 소들이 산다는 소 목장 르포기사를 흥미 있게 읽었다.(조선일보 16일자 주말판) 전남 장흥 P목장의 주인은 한우 100여 마리에게 곡물 배합사료와 볏짚 대신 목초와 미네랄, 비타민제, 명품 토판 천일염을 먹인다. 토판 천일염은 일반 천일염 보다 6배나 비싸 사람도 먹기 어려운 귀한 소금이다.
소들은 쾌적하고 널찍한 축사에서 목초를 혀로 감아 입으로 밀어 넣거나 배 깔고 주저앉아 한가로이 되새김질하며 요들송을 듣는다. 개폐식 지붕에서 쏟아지는 햇볕에 일광욕을 하거나 9,900㎡ 규모의 운동장에서 뛰어놀기도 한다니 주인 잘 만난 행복한 소들이다.
소에게 먹이는 목초는 주로 유기농 라이그래스(ryegrass)와 알팔파(alfalfa)라고 한다. 라이그래스는 인근 농가에서 계약 재배하고 알팔파는 미국에서 수입한다. 라이그래스는 섬유질이 풍부하고 알팔파는 단백질과 칼슘 함량이 높은 ‘목초의 여왕’으로 불린다니 소들은 귀한 대접을 받는다.
목초를 고집하는 이유는 소는 풀을 먹어 소화하는데 최적화된 동물이기에 곡물 배합 사료나 볏짚을 먹이지 않는다. 볏짚이 얼마나 억세면 옛날엔 짚신을 만들어 신었겠는가. ‘사람은 사람답게, 소는 소답게’가 목장주의 경영 모토. 소도, 사육하는 농가도, 소고기를 먹는 소비자도 모두 행복해지는 게 목표란다. 힘들게 키운 소라 소고기 값도 녹록지 않다. 매달 소 한 마리를 잡는데 1㎏ 당 최하 8만 원서 20만 원이라니 서민들에겐 행복한 맛은커녕 입맛만 다셔야 할 판이다.
‘행복한 소 vs 불행한 소’ 논란은 스페인에서 투우 폐지 여론이 일면서 불거지기도 했다. 투우사들은 “투우는 4살까지 푸른 초원을 누비며 호강하다가 경기장에서 죽고, 육우는 우리에 갇혀 살만 찌우다 1년 만에 도살된다. 과연 어느 소가 더 불행 한가”라고 반문하며 투우 폐지 반대 여론에 불을 지폈다. 투우사들에겐 생계가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목장 주인은 자기가 키우는 소가 국내에서 가장 행복한 소라고 자부하지만 상대적 평가다. 옛날의 소들은 다 행복했다. 농번기에 밭 갈고 쟁기 끄는 일 외엔 귀한 대접을 받았다. 우리 집은 늘 소 한 마리를 농우로 키웠다. 어렸을 적 농한기 소 풀을 먹이는 일은 나의 몫이다.
야트막한 뒷동산이나 들판에 풀어 놓고 한가롭게 풀을 뜯게 했다. 우리에 갇혀 가져다주는 배합사료나 먹는 육우에 비교할 수 없는 자유를 누렸다. 소가 풀을 뜯는 동안 풀밭에 누워 파란 하늘에 뭉실뭉실 피어오르는 뭉게구름을 바라보며 꿈을 그려보거나 어렵사리 구한 시집을 펼치며 시심에 젖었다.
겨울철엔 볏짚을 작두로 잘게 썰어 등겨와 콩깍지 등을 넣어 사랑방 무쇠솥에 쇠죽을 끓여 먹였다. 고된 농사가 끝나면 영양식으로 쇠죽에 콩을 듬뿍 넣은 특식을 제공했다. 가마솥 아궁이에 불을 지피면 마음도 붉게 타올랐다. 마구간에 새 짚을 깔아주면 소는 느긋하게 누워 두 눈을 껌뻑이며 되새김질한다. 사람의 소소한 행복도 추억의 되새김에서 나온다. 코로나에 발목이 잡히고 피로감이 쌓이면서 평범한 일상마저 간절하게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