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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 목사님] 소인배와 대인배

[한희철 목사님] 소인배와 대인배

by 한희철 목사님 2021.05.12

어릴 적 형제들과 바둑을 두었기 때문일까요, 바둑이 아주 낯설지는 않습니다. 잘 두는 것은 아니지만 규칙과 가는 길 정도는 알아 이따금 바둑에 관심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바둑 속에 인생의 의미가 담겨 있다 싶어 마음이 가곤 합니다.
형제들과 바둑을 두며 들었던 바둑에 관한 이야기들 중에는 지금도 마음에 남아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아생연후살타’(我生然後殺他)도 그 중의 하나입니다. ‘내가 먼저 산 뒤에 남을 죽이라’는 말이지요. 내 말의 형편을 돌아보지 않은 채 상대를 무리하게 공격하다가는 내가 망하기가 십상입니다.
‘남의 집이 커 보이면 진다’는 말도 생각납니다. 바둑은 한 집을 다투는 승부입니다. 바둑을 두다 보면 상대방의 집이 커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무리한 선택을 하게 되고, 그러면 결국 승부를 그르치게 됩니다. 남의 것을 탐내거나 두려워하기보다는 내가 가진 것을 소중히 여기고 든든하게 생각하는 마음이 필요하다는 것을 돌아보게 합니다.
그렇게 기억나는 말 중에는 ‘50집을 먼저 짓는 사람이 진다’(先作五十家者必敗)는 말도 있습니다. 바둑에서 50집은 굉장히 큰 집입니다. 그런데 상대보다 먼저 50집을 짓게 되면 자신이 우세하다는 자만에 빠지기가 쉽습니다. 그러면 자꾸만 쉬운 수를 두게 되고 필요 이상의 양보를 하게 되는데, 그러다 보면 50집을 지었으면서도 패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바둑 이야기를 하게 된 것은 며칠 전에 들었던 한 이야기 때문입니다. 중국갑조리그에서 김지석 선수와 천야오웨 선수가 대국을 하던 중에 생각하지 못한 일이 발생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두 사람은 온라인 대국을 하고 있었는데, 김지석 선수가 엉뚱한 곳에 착점을 한 것이었습니다. 누가 봐도 둘 수가 없는 자리, 마우스 미스였습니다.
정해진 규칙에 의하면 마우스 미스를 해도 결국은 그 돌을 놓은 사람의 책임입니다. 마우스 미스를 했다고 놓은 돌을 거둘 수가 없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번엔 달랐습니다. 천야오웨 선수가 마우스 미스로 잘못 놓인 돌을 다시 둘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한 것이었습니다. 팽팽한 승부가 이어지던 중이었습니다. 심판진은 의논 끝에 천야오웨의 의견을 받아들였습니다. 결국 그 대국의 승자는 김지석 선수가 되어 두 사람이 속한 양 팀이 무승부를 이뤘지만, 그 대국의 진정한 승자는 천야오웨 선수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천야오웨 선수의 선택은 지난해 삼성화재배 결승 1국을 떠올리게 합니다. 커제와 결승전을 치르게 된 신진서 선수가 21수만에 큰 실수를 했습니다. 1선에 착점을 했으니, 누가 봐도 마우스 미스였습니다. 모니터와 연결된 마우스를 움직이다 마우스의 선이 옆에 있던 대국용 노트북의 마우스패드를 건드려 발생한 해프닝이었습니다. 하지만 대국은 계속 진행이 되었고, 신진서 선수는 120수만에 돌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같은 상황이었지만 커제와 천야오웨의 선택은 서로 달랐습니다. 누가 소인배인지 대인배인지를 드러내는 것은 그가 보여주는 옹졸함과 너그러움에 달려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