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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판권 교수님] 대한제국과 자두나무 꽃

[강판권 교수님] 대한제국과 자두나무 꽃

by 강판권 교수님 2021.07.26

자두나무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미과의 갈잎떨기나무지만 오얏나무는 낯선 이름이다. 오얏나무는 주로 강원도나 경상도에서 부른 자두나무의 옛 이름이다. 여름은 자두의 계절이다. 중국에서는 입하 때 자두를 먹으면 얼굴이 고와진다는 속설이 있었다. 여자들은 이날 자두나무 아래에 모여 자두 즙과 술을 마시곤 했다. 이때 행사를 ‘주색주(駐色酒)’라 불렀다.
요즘은 자두가 흔하지만 내가 어릴 적에는 무척 귀한 과일이었다. 자두는 붉은 복숭아를 의미하는 자도(紫桃)의 우리말이다. 그런데 학명에서 보면 자두나무는 복사나무를 비롯해서 많은 나무들의 기준이었다. 자두의 학명(Prunus salicina Lindl.) 중 ‘자두’를 의미하는 속명 프루누스(Prunus)는 장미과의 복사나무, 매실나무, 살구나무, 왕벚나무, 올벗나무, 벚나무, 산벚나무, 섬벚나무, 양벚 등의 속명이기도 하다.
자두나무는 중국에서도 흔한 나무였다. 그래서 고사에도 자주 등장한다. 그중 가장 자주 언급하는 사례가 “참외 밭에서 신발을 고쳐 신으면 참외를 따는 것으로 의심하고, 오얏나무 아래에서 갓을 바로잡으면 오얏을 딴다는 혐의를 받는다”는 말이다. 중구 송나라 곽무청(郭茂倩, 1041-109)이 편찬한 『악부시집(樂府詩集)』 중 섭이중(聶夷中)의 「군자행(君子行)」에 나오는 이 말은 매사에 조심해야 한다는 뜻이다. 오얏나무와 관련한 또 다른 고사는 “복숭아나무와 오얏나무는 말이 없으나 그 밑에 저절로 길이 생긴다”는 내용이다.
『사기(史記)·이장군열전(李將軍列傳)』의 이 말은 덕행이 있는 사람은 남들이 자연히 그에게 심복하는 것을 비유한다. 좋지 못한 사례도 있다. 중국 서진(西晉)의 죽림칠현 중 한 사람이었던 왕융은 성품이 탐욕스럽고 인색하여 자기 집에 종자가 좋은 오얏나무의 오얏을 팔 적에는 남들이 그 오얏 종자를 못 받도록 반드시 오얏씨를 송곳으로 뚫은 다음에 팔았다. 이를 ‘찬리(鑽李)’라 부른다.
중국 최초의 종합농서인 가사협의 『제민요술(齊民要術)』에는 대추나무와 더불어 자두나무 시집보내기를 소개하고 있다. 이는 정월 1일이나 15일에 갈라진 나무 가지 사이에 벽돌을 끼우는 풍속이다. 또 12월에 막대기로 가지 사이를 가볍게 쳐주고 정월 그믐에 다시 쳐주면 열매가 많이 열린다고 믿었다.
자두나무를 의미하는 한자는 ‘이(李)’이다. 우리나라의 이 씨 성은 모두 오얏나무다. 이성계가 세운 조선왕조를 상징하는 나무도 오얏나무이다. 그래서 대한제국의 황실 공식문양도 오얏나무 꽃이다. 자두나무의 꽃은 잎보다 먼저 피고, 색깔은 흰색이다. 장미과의 꽃잎이 다섯 장이듯이 자두나무의 꽃잎도 다섯 장이다. 대한제국 황실의 공식문양에도 다섯 장의 자두 꽃을 새겼다. 그러나 조선과 대한제국을 상징하던 자두나무의 꽃은 사라지고, 무궁화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무궁화는 대한민국의 공식 문양이다.
자두 꽃에서 무궁화로 바뀐 것은 일제강점기 때문이었다. 일제강점기는 우리나라의 많은 것들을 단절시켰지만 상징나무까지 단절시켜버렸다. 아직도 나라꽃 무궁화를 둘러싼 논쟁이 계속되고 있는 것도 식민지를 경험한 우리의 역사 단절 때문이다.
문화재청-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에서 “황실의 문양, 오얏꽃 자수 만들기”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것도 역사 단절의 상흔 중 하나이다. 자두나무의 다섯 장 꽃잎에는 ‘오행(五行)’ 사상이 깃들어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