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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판권 교수님] 개잎갈나무의 꿈

[강판권 교수님] 개잎갈나무의 꿈

by 강판권 교수님 2019.01.07

소나뭇과의 늘푸른큰키나무 개잎갈나무의 고향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인 히말라야이다. 개잎갈나무는 히말라야에 사는 삼나무 계통의 나무, 즉 히말라야시더의 한글 나무 이름이다. 잎을 갈지 않는다는 뜻을 가진 개잎갈나무가 설산의 히말라야에서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살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다. 그래서 우리나라에는 개잎갈나무에 대한 추억을 가진 사람들이 적지 않다. 특히 1970년대에 초중등학교를 다닌 학생들은 운동장이나 건물 옆에서 개잎갈나무와 더불어 학창 시절을 보낸 추억을 잊지 못한다. 그러나 지금도 간혹 초중등학교에 1970년대에 심은 개잎갈나무를 만날 수 있지만 교정에서 나이 많은 개잎갈나무를 만나기란 아주 어렵다. 교정의 개잎갈나무가 이런저런 이유로 사라졌기 때문이다.
개잎갈나무가 교정에서 사라진 가장 큰 이유는 이 나무가 태풍에 넘어질 위험성 때문이었다. 개잎갈나무는 부모인 소나무와 달리 뿌리가 땅속 깊숙이 내리지 않는 천근성이다. 그래서 독립수의 개잎갈나무는 태풍이 불면 쉽게 넘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런 이유로 초중등학교 교정에 살고 있는 개잎갈나무는 대부분 학생들의 안전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목이 잘리거나 사라졌다. 그러나 개잎갈나무가 사라지면서 학생들이 간직하고 있던 개잎갈나무에 대한 추억까지 날아갔다.
나는 얼마 전 경상남도 진주시에 위치한 진주여자고등학교 교정에 살고 있는 개잎갈나무를 만났다. 이곳 개잎갈나무의 나이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우리나라 개잎갈나무 중에서도 아주 키가 크면서도 매우 건강하게 자라고 있는 보기 드문 나무다. 이곳 개잎갈나무는 몇 개의 지주에 약간 의존하고 있지만 스스로 엄청난 몸을 잘 유지하고 있다. 내가 이곳의 개잎갈나무를 찾은 것은 다른 교정의 개잎갈나무와 거의 비슷한 조건인데도 어떻게 오랜 기간 동안 건강하게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를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곳 개잎갈나무가 건강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오로지 학교에 계시는 분들의 나무에 대한 사랑 때문이다. 진주여고의 개잎갈나무는 이곳 학교 구성원들의 사랑으로 자란 것이다. 그래서 진주여고의 개잎갈나무는 학교 구성원들의 자랑이자 자부심을 상징하는 나무다.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개잎갈나무는 태풍이나 가뭄 등 자연재해의 고통 때문이 아니라 인간의 무지와 약탈 때문에 아직도 수난을 겪고 있다. 레바논의 국기 문양이기도 한 신령스러운 개잎갈나무의 수난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나무에 대한 천박한 인식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성경에 영광과 평강의 이미지로 등장하는 개잎갈나무의 수난은 곧 개잎갈나무의 꿈을 뺏는 일이다. 개잎갈나무의 꿈은 머나먼 타향에서도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이러한 개잎갈나무의 꿈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바라는 꿈이기도 하다. 개잎갈나무의 꿈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나무의 존재를 인정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안전사고는 개잎갈나무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천근성의 개잎갈나무를 무모하게 교정에 심었기 때문에 일어난다. 인간이 필요해서 심은 나무를 나무 탓으로 돌려 목을 자르거나 죽이는 것은 자신들이 원해서 생긴 자식을 힘들다고 버리는 것과 다르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