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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섭 시인님] 입학식 땐 역시 자장면

[이규섭 시인님] 입학식 땐 역시 자장면

by 이규섭 시인님 2019.03.08

호수처럼 잔잔한 아드리아 해에 부서지는 햇살은 눈부시다. 파란 하늘과 하얀 뭉게구름, 달고 상큼한 공기를 마시며 여행의 여유를 누리다 귀국하니 미세먼지에 숨이 막힌다. 농도 짙은 미세먼지는 혼탁한 세상살이처럼 시야를 뿌옇게 가리며 일상의 발목을 잡는다.
숨쉬기조차 괴로운 미세먼지 속에 열린 손자 초등학교 입학식에 참석했다. 딸과 아들의 초등학교 입학식 땐 바쁘다는 이유로 참석하지 못했다. 콧물 닦는 손수건을 가슴에 달고 입학하던 까마득한 날의 입학식 풍경이 아득하게 떠오른다. 콩나물교실에 2부제 수업은 세월의 강을 건너 전설이 된지 오래다. 학생 수가 줄어 나 홀로 입학에 신입생 0명인 학교가 전국에 여러 곳이다. 손자가 입학한 학교도 지난해 보다 한 반 줄었다.
초등학생이 된다는 것은 어린이집이나 유치원과는 달리 제도권 공교육 현장에 편입되는 사회생활의 시작이다. 어미 닭의 품을 떠나는 병아리와 같다. 엄마 아빠들은 설렘 반 두려움 반으로 학교에 첫발을 내딛는 자식의 입학식을 지켜본다. 손자가 배정받은 학급 교실부터 들렀다. 담임 선생님은 키 낮은 책상에 입학생들을 앉히고 학부모들이 빙 둘러선 가운데 교육 일정과 학교생활에서 지켜야 할 일들을 알려준다.
입학 후 첫 한 달 정도는 등하교를 도와주는 것이 좋다. 길도 익히고 위험한 것을 함께 오가며 살펴준다. 그 다음부터는 학교 앞까지만 데려다주는 등 거리를 줄여 나가라고 한다. 맞벌이로 등하교 지도가 어렵다면 친한 이웃 학부모에게 부탁을 하거나 또래 친구들과 함께 등하교를 할 수 있도록 짝을 지어주는 것도 방법이라 일러준다.
아침은 꼭 챙겨 먹이고 배변은 가능하면 집에서 하고 오기를 바란다. 어린이집처럼 간식이 없으니 “배고파요”하는 학생이 더러 있고, 공중화장실을 이용해본 적이 없는 아이일수록 학교 화장실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을 지키고 준비물은 스스로 챙기도록 도와주란다. 명찰은 가정에서부터 착용하지 말고 학교에 도착해서 목에 걸어야 학교와 반, 이름 등을 외부에 노출시키지 않게 된다는 등 자상하게 당부한다.
입학식이 열리는 강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국민의례와 담임 선생님 소개, 신입생과 재학생의 인사, 교가 제창 등 식순도 아이들에겐 생소하지만 공식 행사의 통과 의례다. “‘맑고 밝고 바르게 자라자’는 우리 학교의 교훈처럼 학생들이 사회에서 훌륭한 역할을 잘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가르치겠다.”는 교장 선생님의 환영사가 긴 여운을 남긴다.
입학식 뒷마무리는 점심 식사. 손자와 어린이집을 함께 다닌 단짝 친구와 엄마도 함께했다. “입학식과 졸업식 메뉴는 자장면이 전통”이라고 제안했다. 아들은 “옛날 얘기”라며 이견을 드러낸다. 손자가 나서 “할아버지가 제일 어른이니까 자장면 먹으러 가자”고 동의하여 결정됐다. ‘손자 바보’ 소리 들어가며 애정을 쏟은 보람을 느껴 흐뭇하다. 미래 세상은 미세먼지에 가린 세상처럼 예측하기 어렵다. 혼탁한 세상을 맑고 밝게 살아가려면 씩씩하고 구김살 없이 학교생활에 잘 적응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