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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섭 시인님] 바다가 연주하는 음악

[이규섭 시인님] 바다가 연주하는 음악

by 이규섭 시인님 2019.04.26

바다가 연주하는 오르간 소리를 듣는다. 알프스 만년설과 아드리아 해의 푸른 바다를 스쳐온 알프호른의 음향처럼 아련하다. 낮고 깊은 울림에 영혼이 맑아진다. 부웅∼붕∼ 수평선 너머서 귀항을 알리는 뱃고동처럼 아득하고, 소라껍질에 귀를 대면 일렁이는 파도 소리 같다. 혼탁한 세상의 온갖 소음을 바다의 선율이 씻어준다. 눈을 감고 귀를 쫑긋 세운다. 참 편안하다.
세상에서 하나뿐인 거대한 바다 오르간(Moske Orgulje)은 파도의 움직임에 따라 아름다운 자연의 음악을 연주한다. 아드리아 해 북부에 위치한 크로아티아 자다르(Zadar)의 명물이다. 해변을 따라 75m의 산책로에 넓고 길게 계단식으로 만들었다. 계단 하단 작은 구멍 안에 35개의 파이프를 설치해 놓았다. 바닷물이 공기를 밀어내며 구멍 사이로 소리를 낸다. 파도의 크기와 속도, 바람의 세기에 따라 소리가 다르다. 수많은 관광객들이 건반 모양으로 만든 긴 벤치에 앉아 바다가 연주하는 파이프 오르간 소리를 들으며 노을이 물들기를 기다린다.
바다 오르간은 건축가 니콜라 바시치가 2005년에 만든 설치예술 작품이다. 2006년 유럽 ‘도시의 공공상’을 받았다. 섬마을에서 태어난 그는 파도가 해변에 부딪히는 소리와 뱃고동 소리를 들으며 자랐다. 파이프와 호루라기의 원리를 바다와 융합시킨 창조적 발상이 돋보인다. 그 옆 ‘태양의 인사(Sun Salutation/Pozdrav Suncu)’라는 설치 작품도 그가 만들어 바다 오르간과 연계시켰다. 지름 22m의 원형 바닥에 300장의 태양열 집열판과 발광 다이오드(LED)를 깔았다. 낮에 강렬한 태양열을 모았다가 어둠이 내리면 화려한 색상을 내 뿜는다. 아름다운 일몰을 바라보며 파도의 음악을 듣다가 태양광 조명에 불이 들어오면 사람들은 집열판 위에서 현란한 춤사위를 펼친다. 방문 당시 ‘태양의 인사’는 공사 중이라 아쉬움을 남기며 돌아섰다.
밤바다로 유명한 전남 여수에 세계 두 번째로 바다 오르간을 설치한다. 국내서도 들을 수 있다니 반갑다. 여수신북항은 자다르 해변과 연 평균 풍속이 비슷하여 파이프 오르간 설치에 적합하다는 것. 해풍에 견딜 수 있게 아연 합금 처리한 파이프 30개로 조율한다. 내년 2월 조립에 들어가 3월이면 시연이 가능하다는 보도다. 니콜라 바시치는 여러 나라에서 설치 의뢰가 들어왔으나 자국의 관광 수요를 늘리려 거절했다는 말을 현지 가이드로부터 들은 터라 저작권료를 내고 설치하는 건지, 기술 모방인지 궁금하다. 여수신북항이 2021년 완공되면 해시계 광장, 파도 소리 전망대와 어우러져 관광 명소로 떠오를 전망이다.
자다르는 고대 로마 식민지로 3000년의 역사를 품은 항구도시다. 해변 산책로에서 구시가지로 접어들면 폐허가 된 로마시대 시민광장 포룸과 제사 터, ‘수치심의 기둥’ 흔적이 남아 오래된 도시임을 실감 나게 보여준다. 9세기에 세운 비잔틴 양식의 성 도나트 성당은 원통형 외관이 독특하다. 성벽에 유일하게 남은 ‘육지의 문’은 베네치아 공화국이 지배하던 16세기에 세웠다. 문에 조각된 ‘날개 달린 사자상’은 베네치아 상징이다. 해양 풍광과 함께 볼거리가 푸짐한 역사 유적은 나그네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