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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 목사님] 사랑은 정직한 농사

[한희철 목사님] 사랑은 정직한 농사

by 한희철 목사님 2019.05.01

얼마 전 <교차로> ‘아름다운 사회’ 란에 ‘오래 가는 인연’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쓴 적이 있습니다. 결혼식 주례를 부탁받은 분이 예비 신랑과 신부를 처음으로 만나는 자리, 혹시나 싶어 사진 한 장을 찾아 챙겨 나갔지요. 자신의 딸이 오래전 강원도 원주의 한 끄트머리 마을에 있는 단강초등학교를 찾아가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쳐주는 봉사활동을 한 적이 있는데, 예비 신랑이 단강 사람이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생각지 못한 사진을 본 예비 신랑은 깜짝 놀랐는데, 사진 속에 자신의 어릴 적 모습이 담겨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다해 축복하고 싶은 복된 인연이다 싶었지요.
멀리 미국에 사는 한 지인이 그 글을 읽고는 답장을 보내왔습니다. 답장 속에는 더욱 기가 막힌 이야기가 담겨 있었습니다. 실화라고 하는 말이 믿겨지지 않을 만큼의 감동적인 이야기였습니다.
오래전에 읽었던 신문 기사라고 합니다. 장을 보러 나갔던 부부가 어린 아들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잠깐 부주의했을까요, 아무리 찾아도 아들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사방팔방 애를 써도 아들을 찾지 못하자 두 부부는 고아원에서 여자아이를 입양했습니다. 누구라도 자신의 아들을 정성으로 길러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딸을 지극한 사랑으로 길렀답니다.
오랜 세월이 지나 딸이 혼기가 되어 교제하던 남자 친구를 부모님께 소개해드리려고 집으로 데리고 왔습니다. 그런데 두 부부가 보기에 딸이 데리고 온 남자 친구의 모습이 너무도 친근하더랍니다. 처음 보는 데도 전혀 낯설지가 않았던 것이지요.
식사를 하던 중 부부는 남자 친구의 팔에 있는 이상한 점을 보고는 화들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어려서 잃어버린 아들이 가지고 있던 점과 똑같은 점이었던 것입니다. 확인을 한 결과 딸이 데리고 온 남자 친구는 어려서 잃어버린, 오랜 세월 동안 소식을 모르고 지내던 자신의 아들인 것이었습니다. 친아들이 사위가 되고 정성으로 키운 딸이 며느리가 되는 기가 막힌 만남, 하늘이 주시는 선물이다 싶었습니다.
씨앗은 오늘 심고 내일 열매를 거두지 않습니다. 땅속 어둠 속에서 숨을 쉬며 때를 기다립니다. 마음에 품은 꿈이 익어갈 무렵, 씨앗은 더는 참을 수 없다는 듯 자신의 몸을 뚫고 싹을 냅니다. 그리고도 한참의 시간이 지나 열매를 맺습니다.
사랑은 하나의 씨앗인지도 모릅니다. 당장은 아무런 변화가 없을지라도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아름답고 눈부신 열매를 맺습니다. 사랑의 씨앗을 뿌리는 이 땅의 모든 이들과 함께 서로를 격려하듯 시인 김남조의 ‘사랑초서’에 담긴 시 하나를 나누고 싶습니다.
사랑은 정직한 농사(農事)
이 세상 가장 깊은 데 심어
가장 늦은 날에
싹을 보느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