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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규섭 시인님] 100세 시대가 행복하려면

[ 이규섭 시인님] 100세 시대가 행복하려면

by 이규섭 시인님 2019.05.31

“○○아, 네가 크면 어떤 집을 짓고 싶어?” “음, 난 벽돌로 이층집을 지을 거야. 1층에는 멍멍이, 닭, 고양이, 낙타 방을 만들 거고, 2층에는 우리 방과 아이 방이 있을 거야. 난 아들 하나, 딸 하나 낳을 거야.” “그럼 엄마는? 어떻게 엄마 방이 없네?” “아, 엄마는 아빠하고 살아. 뭐 하러 나하고 살려고 그래? 아빠하고 따로 살아야지!”
기념할 일이 유난히 많은 오월을 보내며 기억에 남는 기사다. 중앙일보 쌍방향 나눔터 ‘더, 오래’ 코너에 일반인 필진이 썼다. 50대를 코앞에 둔 중견기업 중간 간부는 가족을 태우고 여행을 가면서 아내와 여덟 살 아들이 뒷좌석에서 나누는 대화를 들으며 실소를 금치 못했다. 아내는 자식 키워봤자 소용없다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아들의 말에 묘한 배신감을 느꼈다고 한다. 은퇴 후 자식과 함께 살기를 기대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부모는 자녀에게 부담되기 싫고, 자녀 또한 결혼 후 보모와 함께 사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부부가 은퇴 후 함께 살 ‘실버타운 플랜’을 실감 나게 소개하여 공감이 간다.
자녀나 배우자 없이 혼자 사는 65세 이상 노인 가구가 지난해 140만 5085명이나 된다는 게 보건 당국의 통계다. 2014년 이후 해마다 6만 명 이상 늘어 5명 가운데 1명꼴이다. 노인 인구는 빠르게 늘고 있는 반면, 부모 세대와 함께 사는 가족 형태는 점차 줄어들면서 혼자 사는 노인 비중이 커졌다. 예전엔 자식이 부모를 봉양했지만 열 명 가운데 일곱 명이 자녀와 따로 사니 여덟 살 철부지를 나무랄 수 없다. 무연고 사망자와 고독사가 해마다 늘어나는 것도 우리 사회의 서글픈 민낯이다.
가정의 달 우울한 소식은 그뿐만 아니다. 한국 노인들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또래 가운데 가장 고단한 노후를 보낸다는 부끄러운 조사 결과가 나왔다. OECD의 ‘한눈에 보는 사회 2019’(2017년 기준)에 따르면 한국의 남성은 72.9세, 여성은 73.1세가 돼서야 노동시장에서 은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OECD 평균 보다 무려 10년 가까이 더 일을 하는 셈이다.
은퇴 후 취미활동을 하며 노후를 보내고 싶지만 생활비를 벌려고 일손을 놓지 못하기 때문이다. 허리가 휘도록 일을 해도 빈곤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단순 노무직이나 공공근로 같은 비숙련 저임금에 종사하다 보니 65세 이상 노인들의 상대적 빈곤율은 45.7%로 에스토니아(35.7%)보다 못하다. 우리나라 노인 인구는 737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15%를 차지한다. 5년 뒤에는 노인 인구가 1000만 명을 넘어선다. 저출산 문제는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가운데 인구 절벽의 경고음이 울린 지 오래다. 미래세대의 부담이 늘 수밖에 없는 구조다.
대졸과 고졸자 취업률이 98%로 공무원 응시자가 11% 감소한 일본은 민·관·학 협력을 통해 100세 인생에 대한 장기 전략을 심도 있게 논의하고 있다. 우리도 노인 일자리 등 땜질식 처방에서 벗어나 행복한 100세 시대를 위한 장기 전략을 적극 모색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