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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섭 시인님] 공생을 꿈꾸는 기생의 삶

[이규섭 시인님] 공생을 꿈꾸는 기생의 삶

by 이규섭 시인님 2019.06.07

단독 주택을 고집스레 지키며 살아온 건 촌놈 출신이라 태생적으로 땅을 딛고 사는 게 편안하다. 듣기 좋게 포장하면 자연친화적 주거 형태가 몸에 맞다. 아파트에 입주할 기회가 있었지만 아버지를 모시고 살아 불편할 것이란 어쭙잖은 효심도 내재됐다. 고소공포증에 닫힌 공간 같아 기피한 측면도 있다.
마당 한 귀퉁이 작은 화단에 대추나무와 감나무를 번갈아 심었으나 환경 요인 탓인지 시름시름 몸살을 앓아 캐냈다. 한 때 머루넝쿨은 2층 옥상까지 기세 좋게 뻗어 초록 그늘을 드리웠다. 머루주를 담글 만큼 주렁주렁 열렸는데 검은 점무늬 박힌 꽃매미가 찾아들어 없앴다. 그 자리에 심은 앵두가 빨간 립스틱 짙게 바르며 무르익어간다. 줄장미는 우중충한 시멘트 담장에 장미꽃 수놓은 녹색 커튼 구실을 한다.
옥상 화분에 기르는 고추는 여름 내내 알싸하게 입맛을 돋운다. 해마다 분갈이를 하며 가꾸는 재미가 쏠쏠하다. 오가피와 엄나무, 모란과 천사의 나팔, 채송화와 과꽃이 시골 화단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옥상서 숯불 피워 삼겹살을 구워 먹는 것도 단독주택이니 가능하다. 푹푹 찌는 무더위 땐 가끔 옥상 평상에 모기장을 치고 잔다. 멍석에 누워 총총한 별을 헤던 시절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또 다른 이유는 은퇴 후 월세를 놓아 생활비에 보태려 했는데 물거품이 됐다. 30, 40여 년 전만 해도 반 지하 방은 내놓기 바쁘게 세입자가 들었다. 주택 공급이 늘고 생활환경이 변화면서 반 지하방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이사가 취미인 듯 아파트를 수없이 옮기며 재산을 불린 지인들에 비하면 단독 주택 지킴이의 재테크 성적표는 초라하다.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영화 ‘기생충’을 개봉 사흘 만에 봤다. 반 지하 셋방의 구조는 예전과 비슷한데 삶의 방식은 확연히 다르다. 가족 네 명 모두 백수인 기택(송강호 분)네 장남 기우(최우식)가 친구의 소개로 박 사장(이선균) 딸 고2생 과외 선생으로 들어가면서 빈자의 ‘기생(寄生)’은 시작된다. 여동생은 박 사장 아들 미술치료사로, 아버지는 운전기사, 어머니는 가사도우미로 합류하여 ‘기생의 풀세트’가 완성된다.
지하와 지상을 연결하는 계단은 부자와 가난한 자의 경계이자 동선이다. 계략과 모략으로 획득한 기생충 같은 삶은 오래가지 못한다. 이해와 충돌이 긴장감을 불어넣으며 비극의 종말을 향해 치닫는다. 반 지하방에서 나는 꿉꿉하고 썩은 두부 같은 지린내를 털어내고 공생을 꿈꾸던 기생의 삶은 산산조각난다.
예전엔 반 지하에서 사글세나 월세로 궁핍하게 살다가 전세로 지하를 벗어나고,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루며 성취감을 맛보았다. 삶에는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고, 지켜야 할 도리와 단계가 있다. 사다리를 건너 뛰어오르면 추락의 위험이 따른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고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 빈부 격차의 사회문제를 다뤘다는 거창한 프레임보다 우습고도 슬픈 블랙 코미디라 생각하니 편하다. 반 지하방의 햇볕 한 줌을 담아내는 봉준호 감독 특유의 디테일은 번득이고, 송강호의 원숙한 연기와 최우식의 풋풋한 연기 조화가 돋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