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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판권 교수님] 침묵의 언어, 침묵의 봄

[강판권 교수님] 침묵의 언어, 침묵의 봄

by 강판권 교수님 2019.06.17

늘 변하는 나무는 침묵의 언어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 사람들은 침묵의 언어 때문에 나무를 사랑한다. 만약에 나무가 사람처럼 말을 많이 한다면 사람들은 나무를 지금처럼 좋아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나무는 자신의 모든 것을 오로지 실천으로 보여줄 뿐이다. 나무가 꽃을 피우고, 잎을 만들고, 열매를 맺는 일련의 과정은 일종의 언어 행위다. 언어는 인간처럼 말과 글을 사용하는 것만 의미하지 않는다. 인간의 몸짓을 언어로 이해하는 것처럼 나무는 인간과 다른 방법으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인간이 나무의 마음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자신의 방법으로 나무의 존재를 이해하려 하기 때문이다.
요즘 국내 정치권은 물론 많은 사람들이 말로 화를 부르는 현상이 자주 발생하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대부분 자신의 말을 쉽게 드러낼 수 있는 기술의 발달 때문이지만, 변하지 않는 사람들의 짧은 식견 때문이기도 하다. 세상의 변화에 잘 적응하거나 변화를 주도하는 사람들은 결코 말로 화를 부르지 않는다. 나무가 자신의 생각을 말로 보여주지 않고 몸으로 보여주는 것은 변화를 이끌기 때문이다. 나무는 기후와 토양의 조건에 따라 자신을 철저하게 변화시킨다. 변화는 나무가 생존하는 절대적인 원칙이기 때문이다.
변화에 둔감한 자는 언제나 거친 말을 쏟아낸다. 변화에 둔감한 자는 결코 상대방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상대방을 이해할 수 없는 둔감한 자는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기 위해서 부드럽게 말하지 않고 악을 쓴다. 그러나 악을 쓰면 쓸수록 둔감한 자의 존재감은 떨어진다. 나무가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이유는 그저 자신을 변화시킬 뿐 상대방에게 그 어떤 것도 요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변화에 둔감한 자는 자신이 내뱉은 말이 어떤 악영향을 주는지조차 잘 모른다.
1962년 미국의 생물학자 레이첼 카슨이 쓴『침묵의 봄』은 나무의 또 다른 침묵을 얘기하고 있다. 인간이 사용한 DDT와 같은 화학물질이 생태계에 엄청난 영향을 주어 더 이상 봄철에 꽃이 피지 않고 새 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내일을 위한 우화’는 자연의 침묵이 얼마나 끔찍한 지를 인간에게 경고하고 있다. 『침묵의 봄』은 우리에게 죽은 침묵과 살아 있는 침묵이 무엇인지를 알려준다. 인간이 나무에게 침묵의 언어를 배우지 못하면 정말 죽음의 침묵을 맞을지도 모른다. 사회에서 일정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자일수록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를 잘 알아야 한다. 지금 그들이 해야 할 일은 시대에 뒤떨어진 말로 세상을 시끄럽게 할 것이 아니라 급변하는 이 시대에 진정 무엇이 중요한지를 깨닫는 것이다. 이 같은 깨달음조차 할 수 없다면 정말 입을 닫고 침묵해야 한다.
시대에 뒤떨어진 사고를 가진 자가 세상에 대고 외치는 말만큼 위험한 것도 없다. 세계 역사에서 한 국가가 위험한 상태에 놓인 사례를 살펴보면 언제나 시대에 뒤떨어진 사고를 가진 자가 최고의 자리에 있었을 때다. 몽매한 자가 침묵하지 않고 떠들어대면 현명한 자가 설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나무는 뜨거운 여름철에도 한순간도 게으름피우지 않고 성실하게 성장을 위해 몸부림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