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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판권 교수님] 국수나무와 누들

[강판권 교수님] 국수나무와 누들

by 강판권 교수님 2019.07.01

장미과의 갈잎떨기나무 국수나무는 자잘한 연 노란색 꽃을 피우면서 가지 속에 흰색 골속이 꽉 차 있는 모양이 국수 같아서 붙인 이름이다. 식물학자가 나무의 특징을 보고 국수를 상상한 것은 인간이 국수를 먹은 경험 때문이다. 실물을 통한 인간의 경험은 상상력에 큰 도움을 준다. 만약 인간이 국수를 먹지 않았다면 국수나무의 이름은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국수나무처럼 식물 이름에 인간의 경험이 녹아 있는 경우는 적지 않다. 나는 초여름 낮은 산자락에서 국수나무를 만날 때마다 국수를 떠올린다. 유달리 나는 국수를 좋아한다. 내가 국수를 좋아하는 것은 어린 시절부터 먹은 경험 덕분이다.
국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국수의 원료를 이해해야만 한다. 국수의 원료는 밀이다. 밀은 한자로 소맥(小麥)이라 부른다. 반면에 보리는 대맥(大麥)이라 부른다. 밀과 보리는 비슷하지만 열매의 크기가 다르다. 밀은 보리 열매보다 작다. 그래서 소맥이라 부른다. 맥의 종류 중 교맥(蕎麥)은 메밀을 의미한다. 밀은 인류의 농업 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메소포타미아 우르 지역에서 처음 시작한 밀의 역사는 지금까지 인류의 식품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의 인류가 밀을 통해 섭취하는 음식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많다. 그래서 밀을 알지 못하면 인류의 음식사를 이해할 수 없다. 밀을 비롯해서 메밀, 녹말 등으로 만든 것을 누들이라 부른다.
국수는 우리나라 여름철 음식을 대표한다. 요즘에는 겨울철에도 국수를 많이 먹지만 1980년대 이전까지 국수는 주로 여름철에 먹었다. 여름철에 국수를 먹기 위해서는 보리와 함께 수확한 밀을 도정해서 밀가루를 만들고 밀가루를 통해 국수를 만드는 다소 긴 공정을 거쳐야 한다. 농촌에서는 주로 모내기를 마친 후에 국수를 만드는 시간을 갖는다. 국수를 만들어야 여름철 점심이나 중참으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도 여름철에 밀을 리어카에 싣고 방앗간에 가서 하루 종일 국수를 만들어서 집으로 돌아온 기억을 잊을 수 없다. 국수를 만드는 데 하루 종일 걸리는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같은 방앗간에서 국수를 만들기 때문이다. 특히 국수는 방앗간에서 만들어 말린 후에 집으로 돌아와야 한다. 국수를 집으로 가져온 뒤에는 시원한 다락에 올려서 보관한다.
점심때 국수를 삶아서 아주 차가운 우물물에 씻고 집에서 키운 오이로 채를 만들고 양념장을 넣고 풋고추와 함께 먹으면 더위는 금세 사라진다. 나는 딸이 없는 막내로 태어난 터라 일철에 국수를 삶아서 중참으로 가져간 경험을 갖고 있다. 국수의 장점은 아주 쉽게 만들 수 있다는 점 외에 자주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더욱이 국수는 물국수만이 아니라 다양한 요리가 가능하다. 이는 국수가 지금까지 인류에게 사랑받는 이유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국수는 서민들의 음식이었지만 최근에는 국수도 고급화해서 이전과 다른 요리로 손님을 끌고 있다. 국수의 이 같은 변신은 국수가 갖고 있는 다양성 덕분이다. 더욱이 음식도 시대의 변화에 따라 바뀌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국수나무가 질리지 않는 것도 이 나무가 해마다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