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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 스님] 엄지손가락의 반란

[정운 스님] 엄지손가락의 반란

by 정운 스님 2019.07.02

“큰 그릇은 다만 소용이 큰데 쓰여 질뿐이고 작은 그릇은 작은데 소용이 될 뿐입니다. 크건 작건 그릇들은 각자 그들의 역할이 있습니다. 좋은 목수라면 큰 나무든 작은 나무든 결코 버리지 않습니다. 어떤 나무든지 잘 사용합니다. 좋고 나쁜 것은 없습니다. 좋은 것들은 좋은 대로, 굽은 것은 굽은 그대로 목적에 맞게 잘 사용하면 됩니다. 좋다고 집착하고 나쁘다고 버리지 마십시오. 좋고 나쁜 친구의 개념도 그러합니다. 마지막으로 하고픈 말은 모든 개념적인 생각으로부터 자유로워지라는 것입니다.”
위의 내용은 구한말 스님인 경허(1849~1912)가 만행 도중, 동학사에 잠시 들려 스님들과 신도들에게 설법한 내용 가운데 일부분이다. 앞에서 언급한 내용을 보면, 경허스님은 그 사람은 그 사람 나름대로 존재적 가치가 있고, 물건은 그 물건 나름대로 쓸모가 있으니, 그 어떤 것에도 분별심을 갖지 말고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라는 것으로 해석된다. 또한 인간의 육신을 이루고 있는 각각도 그마다 역할이 있다고 본다. 근자에 필자는 앞에서 말한 내용을 뼈저리게 실감했다.
한 달 전부터 오른손 엄지손가락이 약간씩 부어오르더니, 조금만 부딪혀도 아프고 사용하기가 불편했다. 파스나 약을 바르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약을 발랐다. 바쁜 일이 있어 병원 갈 짬이 나지 않아 차일 피일 미루었더니, 점점 심각할 정도로 통증이 심했다. 결국 한 달 만에 병원에 갔더니 의사는 양쪽 손 모두 엑스레이를 찍어야 한다고 했다. 엑스레이 결과 양쪽 엄지손가락 부위에 관절이 손상된 것으로 나타났다. 왼손 오른손이 똑같은데, 아직 왼손 엄지손가락은 통증이 심하지 않을 뿐이라는 것이다. 의사는 너무 많이 써서 그런 것이라고 하면서 일반적으로 컴퓨터를 많이 사용한 사람에게 오는 것으로 관절에 문제가 생긴 것이란다. 낫는 보장은 없고 조금 속도를 줄이도록 조심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하였다. 의사에게 ‘나는 아직 젊어 그럴 리가 없다’고 말하니, 의사는 어처구니없어 한다. 염증약을 먹고, 손가락 보호대로 보호를 해주니, 조금은 살 것 같다.
어쨌든 엄지손가락이 아프고 나서야 엄지의 역할이 얼마나 컸는지를 실감했다. 옷을 입을 때는 말할 것도 없고, 작은 손빨래 하나 하는 것도 힘들다. 운전 시 기어를 당길 때, 음료수병을 딸 때도 힘을 가할 수 없고, 젓가락질 또한 쉽지 않는 등 불편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아마 어느 부위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몇 년 전 무릎이 아파보니, 앉고 설 때나 계단 오를 때, 빨리 걸어야 할 때조차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어 힘들었었다.
육신의 장기 하나하나도 각각의 역할이 있으며, 손가락 마디 마디도 각각의 역할이 있고, 발가락 마디 마디도 각자의 역할이 있다. 하나의 장기나 몸의 구조가 역할을 못해준다면,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마음까지도 편치 못하다.
이 세상 모든 이치도 그러할 것이다. 가정에서 엄마는 엄마대로 아빠는 아빠대로 자식은 자식대로 그 역할이 있다. 한 사회도 그러하고, 한 나라의 구조도 누구나 그만의 역할을 해주기 때문에 세상이 돌아간다고 생각된다. 엄지손가락의 반란을 통해 신체 각 부위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이며, 어떤 물건이든 어떤 사람이든 그 위치에서 소중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새삼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