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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가 세상을 바꾼다

개가 세상을 바꾼다

by 이규섭 시인님 2019.07.12

‘개가 사람을 물면 뉴스가 안 되지만, 사람이 개를 물면 뉴스가 된다’. 19세기 미국 언론인 찰스 대너가 뉴스 가치판단 기준의 일례로 제시했다. 뉴스의 희소성과 신기성을 강조한 말이다. 언론 전공 학도는 물론 언론사 초년생들이 금과옥조처럼 여겼다. 지금은 개가 사람을 물던가, 사람이 개를 물어도 뉴스가 되는 세상으로 바뀌었다.
최근 세 살배기 여자 아이가 한 아파트 복도에서 영국산 사냥개에게 허벅지를 흉터가 남을 정도로 물렸다. 그 개는 이전에도 여러 차례 주민을 공격했다고 한다. 전문가는 주인은 개를 못 키우게 하고 개는 안락사를 권장했다. 개 주인은 잘못은 인정하지만 안락사는 절대 시키지 않겠다고 완강하게 버텨 논란이 되고 있다. 2년 전엔 유명 식당의 50대 여성 대표가 이웃집 개에 물려 엿새 만에 패혈증으로 숨지는 사고가 발생하여 충격을 줬다. 집 안에서 진돗개가 한 살 배기를 물어 죽이는 끔찍한 사건은 개 물림 사고의 심각성을 드러냈다. 국내 개 물림 사고는 한 해 1000건이 넘는다. 개 입마개 등 펫예절이 절실한 이유다.
사람이 개를 물어 대서특필된 사건은 2008년 브라질의 열한 살 소년이다. 친척 집에 놀러 갔다가 사나운 핏볼종 개가 갑자기 달려들어 물자 개의 목을 휘감고 같이 물었다. 얼마나 세게 물었던지 소년의 송곳니가 부러졌다. 이 소식은 전 세계로 타전됐고, ‘개를 문 소년’은 유명세를 탔다.
반려동물 인구가 급증하면서 동물 관련 직업이 4차 산업시대의 유망직종으로 떠오른 것도 변화다. 개가 고용을 창출하게 될 줄 누가 예견했겠는가. ‘반려견 훈련사’는 스타 직업군 반열에 올랐다. 개의 기본 예절교육은 물론 사회화 훈련, 행동 교정 등 ‘가족’이 되어 더불어 살 품격과 소양을 길러준다. 반려동물의 건강과 아름다움을 표현해주는 ‘반려동물 미용사’ 수요도 늘어 자격증 따기가 만만찮다고 한다.
반려견의 산책과 운동을 보호자 대신 도와주는 ‘도그 워커’는 맞벌이 1인 가구가 늘면서 이용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개 물림과 개 짖는 소음, 동물 학대가 사회문제로 떠오르자 분쟁을 다루는 ‘동물 변호사’가 신종 전문 직업이 됐다. ‘반려동물장례지도자’와 반려동물이 죽은 뒤 겪는 상실감과 우울증을 이겨낼 수 있게 도와주는 상담사도 새로운 직업군이다. 한국고용정보원은 반려동물 관련 직업은 앞으로 꾸준히 늘어날 것으로 전망한다. 반려동물 TV프로가 인기를 끌고, SNS 월드가 뜨겁게 달아오르는 것도 세태의 반영이다.
‘개 식용’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늘면서 보신탕집이 급감한 것도 새로운 변화다. 개 소주를 내리는 집도 덩달아 줄어 사양 산업으로 문을 닫거나 업종을 바꿨다. 성남 모란시장, 대구 칠성시장과 함께 전국 3대 개 시장으로 불리던 부산 구포 가축시장이 60년 만에 사라졌다. 한때는 점포가 60여 개 넘을 정도로 호황을 누렸으나 동물보호 인식이 높아지면서 쇠락의 길을 걸었다. 지난 7일 동물보호단체와 시민들은 서울광장에서 개 식용 종식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개들이 삼복을 편안하게 나게 됐다. 바야흐로 개들에 의한 개들을 위한 개들의 세상이 활짝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