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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섭 시인님] 간절한 기도

[이규섭 시인님] 간절한 기도

by 이규섭 시인님 2019.07.19

모든 기도는 간절하다. 간절하게 기도하면 소망이 이루어지고, 기적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믿음 때문에 간절해진다. 기도는 살을 에는 한겨울 새벽, 눈 쌓인 장독대에 정화수 떠놓고 두 손 모으는 어머니의 마음과 같다. 지난봄 발칸 반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성모 발현지 메주고리예 ‘치유의 예수상’ 앞에서 간절하게 기도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큰 울림과 찡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휠체어에 몸을 의지한 채 예수의 발목을 잡고 간절히 기도하는 모습은 뭉클했다.
십자가에 못 박힌 모습을 형상화한 청동 예수상 오른쪽 다리 무릎 부근에 바늘구멍 보다 작은 구멍에서 이슬방울 같은 성수가 맺힌다. 과학적으로 검증할 수 없는 초자연적 현상이다. 성수를 손수건이나 거즈에 묻혀 환부에 바르면 병이 낫는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예수의 상처를 닦아준다는 의미도 있다. 노을이 물드는 시간임에도 기도 차례를 기다리는 줄은 길다. 줄 가운데서 슬그머니 빠져나왔다. 치유의 기도자를 위한 작은 배려다.
메주고리예는 고원 분지의 작은 마을이다. 1981년 6월 24일 마을 외곽 언덕 위에서 성모 마리아가 아이를 안고 있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열여섯 살 청소년부터 열 살 어린이까지 여섯 명이 동시에 지켜보았다. 성모 마리아는 일주일 동안 계속해서 나타났다. 당시 공산 정부였던 유고슬라비아 당국은 종교적 현상이 부각되는 것을 꺼려 이들을 조사했고 수시로 감시했다.
메주고리예는 세계 3대 성모 발현지인 멕시코 과달루페, 프랑스 루르드, 포르투갈 파티마 성지와는 달리 로마 교황청의 공식 성모 발현지로 인정받지 못했다. 그럼에도 매년 수백만 명의 가톨릭 신자들과 관광객이 몰려들어 성황을 이루자 묵인하는 정도다. 메주고리예 본당은 1897년에 지었지만 지반이 약해 무너졌다. 2차 대전 후 다시 짓기 시작하여 1969년 1월 완공됐다.
성당 마당 입구엔 이탈리아 조각가 디노 펠리치의 작품 ‘평화의 성모상’이 평화가 깃든 얼굴로 반긴다, 성당 안 제단 우측 공간에 있는 성모 그림은 미사 중이어서 못 본 게 아쉽다. 성당 앞 기념품 가게의 성모 마리아 상은 너무 젊고 예뻐 비현실적이다. 성당 뒤편 옥외 미사 장소는 5000명이 한꺼번에 미사를 드릴 수 있는 야외 제단으로 규모가 엄청나다. 야외 제단에서 치유의 예수 상으로 가는 길목엔 예수의 일생을 모자이크로 제작한 다섯 개의 기도처가 눈길을 끈다. 다닥다닥 길게 이어진 고해소는 다양한 언어로 고해성사를 한다.
최근 한 종교인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기도형 종교’는 더 이상 먹히지 않는 시대가 올 것이라는 이색 주장을 폈다. 기도는 부처님이나 하느님에게 자신이 원하고 바라는 것을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소망하는 것인데 예전처럼 기도를 해도 원하는 만큼 이루어지지 않는 시대가 된다는 것. 혼밥을 먹듯 어디에서든 손쉽게 혼자 서도 기도를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정해진 장소와 정해진 시간에 모이는 ‘거주형 종교’ 대안으로 ‘명상형 종교’ ‘순례형 종교가 대세가 되지 않을까 진단한다. 기도는 혼자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인간은 나약하고 불안정한 존재이기에 누구에겐가 의지하고 기대려는 속성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