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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 목사님] 자기만의 사전을 만들자

[한희철 목사님] 자기만의 사전을 만들자

by 한희철 목사님 2019.07.24

사전을 ‘읽는다’는 것은 매우 드문 일입니다. 대개 사전은 ‘찾는다’는 말과 어울립니다. 의미를 모르거나 뜻이 애매할 때 펼치는 책이 사전입니다. <동심언어사전>을 펼치고는 앉은 자리에서 내처 사전을 읽었던 것은 ‘빨랫줄’ 때문이었습니다.
<빨랫줄은 얼마큼 굵으면 될까요?/ - 네가 오줌 싼 이불을 버틸 만한 힘줄이면 되지.// 전봇대는 얼마큼 굵으면 될까요?/ -네가 오줌 쌀 때, 고추를 감출 만한 굵기면 되지.// 철로는 얼마큼 굵으면 될까요?/ -네가 엿 바꿔 먹으려 할 때, 둘러멜 수 없는 무게면 되지.>
글을 읽으며 피식피식 웃음이 났습니다. 빨랫줄과 전봇대와 철로의 굵기를 이처럼 기막힌 해학과 유쾌함과 안목을 담아 풀어내다니요. ‘빨랫줄’을 읽고는 얼마든지 ‘빨랫줄’이 담긴 사전을 읽고 싶었습니다. 서둘러 책을 구했고 책을 받은 김에 ‘ㄱ’에서부터 ‘ㅎ’까지 단숨에 읽어나갔습니다. 사전은 단순한 뜻풀이 모음이 아니었습니다. 사물과 단어의 본질을 시로 풀어낸, 사전 행태를 핑계로 한 또 하나의 시집이었습니다.
사전에 실린 ‘콧방귀’는 이랬습니다. <냄새가 나지 않아서/ 그나마 다행이야./ 냄새까지 독했다면/ 벌 받으면서 백 번도 더 뀌었을 거야./ 담임선생님 벌렁코에/ 내 콧방귀를 겨눴겠지./ 착한 나만 그랬겠어> 글을 읽고 나자 ‘콧방귀’의 의미가 선명하게 살아납니다.
짤막한 글 ‘지우개똥’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눈 씻고 찾아봐도 똥구멍이 없다./ 지우개가 제 똥구멍부터 지웠나보다.> 지우개로 뭔가를 지우고 나면 남는 가느다란 지우개똥, 그런데 아무리 살펴보아도 지우개똥은 있는데 똥구멍이 보이질 않자 생각이 엉뚱해집니다. 지우개가 제 똥구멍부터 지웠나보다 하고 말이지요.
‘첫사랑’은 마냥 웃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내 목에 칼이 들어와도!/ 내 눈에 흙이 들어와도!// 목숨부터 걸었건만.> 세상의 모든 것이 달려 있다는 듯이, 사랑 이외의 것은 전혀 의미가 없다는 듯이 몰두했던 첫사랑, 하지만 첫사랑의 마지막 구절은 과거형으로 끝납니다. 전부 아니면 전무라 생각할 만큼 절박하고 절실했는데 어느새 과거형으로 남은 첫사랑. 첫사랑의 열병과 아픔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소금꽃’을 읽으면서는 마음이 숙연해지기까지 했습니다. <땀흘려 일하는 사람의/ 젖은 옷에 피는 겹꽃/ 안전모가 나비이고 안전화가 꽃받침이다/ 열꽃, 웃음꽃, 이야기꽃, 저승꽃,/ 사람이 피우는 꽃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소금꽃./ 삶이라는 꽃잎비빔밥에/ 꼭 넣어야 할 소금꽃.> 소금기 밴 땀이 옷을 적시면 허옇게 피어나는 소금꽃, 사람이 피우는 몇 가지 꽃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꽃이라는 말에 충분히 공감을 합니다. ‘삶이라는 꽃잎비빔밥에 꼭 넣어야 할 소금꽃’이라는 말 앞에서는 소금 같은 하얀 웃음꽃이 핍니다.
꼭 책으로 낼 부담이나 욕심을 버릴 수 있다면 누구라도 자기만의 사전을 만들어보면 어떨까요? 내가 본 세상, 내가 마주한 사물의 속내, 하나씩 하나씩 그 의미를 적어 세상과 나눈다면 우리 사는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아름다운 의미로 가득할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