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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 박사님] 서울 아침

[김민정 박사님] 서울 아침

by 김민정 박사님 2019.08.26

비바람 눈보라에 수백 년 할퀸 자국
인수봉 어깨쯤에, 새 한 마리 앉아 있다
바위도 늙어 가냐고 부리 쪼며 말을 건다

어둠을 걷어내며 부챗살을 펴고 있는
장엄한 아침빛이 서울을 품어줄 때
자잘한 세상일들이 그 품에서 다 녹는다
- 졸시, 「서울 아침」

입추도 지나고 처서도 지나서인지 아침저녁 가을의 기운이 느껴진다. 계절적으로는 봄여름이 지났지만, 달력상으로는 한 해의 3분의 2가 훌쩍 지나가 버린 시점이다. 김광규의 시 「때」를 읽어본다. ‘남녘 들판에 곡식이 뜨겁게 익고/ 장대 같은 빗줄기 오랫동안 쏟아진 다음/ 남지나해의 회오리바람 세차게 불어와/ 여름내 흘린 땀과 곳곳에 쌓인 먼지/ 말끔히 씻어 갈 때/ 앞산의 검푸른 숲이 짙은 숨결 뿜어내고/ 대추나무 우듬지에 한두 개/ 누르스름한 이파리 생겨날 때/ 광복절이 어느새 지나가고/ 며칠 안 남은 여름 방학을/ 아이들이 아쉬워할 때/ 한낮의 여치 노래 소리보다/ 저녁의 귀뚜라미 울음소리 더욱 커질 때/ 가을은 이미 곁에 와 있다./ 여름이라고 생각지 말자./ 아직도 늦여름이라고 고집하지 말자./ 이제는 무엇인가 거두어들일 때’라는 시를 읽으며 새삼 나는 이 가을 무엇을 거두어들여야 할까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문학의 효능 중 하나는 교훈적 기능이다. 절망에 빠져 있을 때, 슬픔에 빠져있을 때, 사랑에 빠져 있을 때, 실연에 빠져 있을 때, 기쁨을 느낄 때 등 우리는 다양한 상황에 맞는 시를 읊조리거나 읽음으로써 자신의 상황과 처지를 더욱 깊게 헤아리고 기쁨은 배가하고 슬픔이나 절망은 인내하거나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얻는다. 나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한때는 바이런의 사랑시를 좋아해 슬픈 시는 울면서 읽기도 했고, 푸쉬킨의 ‘삶’이란 시를 외우면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라는 싯귀를 마음에 두고 살았고, 워드워즈의 ‘무지개’도 좋아했고,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란 시와 롱펠로우의 ‘인생찬가’와 유치환의 ‘행복’과 윤동주의 ‘서시’와 ‘별 헤는 밤’과 한용의 ‘님의 침묵’등도 열심히 외우면서 그때마다 삶의 지침이나 교훈을 얻으며 살아왔다.
또 한 가지 효능은 쾌락적 기능이다. 시를 읽고, 소설을 읽음으로써 우리는 기쁨과 슬픔 등을 통해 정서적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마음속에 쌓여있던 불안, 우울, 긴장 등 응어리진 감정이 풀리고 마음이 정화되는 것을 말한다. 한 편의 시를 읽고, 한 편의 소설을 읽고 나서 어떤 교훈이나 감정의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었다면 그 작품은 좋은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다 같은 상황이나 처지에서 글을 읽는 것은 아니고 그 느낌도 각자가 다를 수 있겠지만, 가능한 많은 사람의 공감을 자아내는 글이 좋은 글이라고 볼 수 있다. 혹 직업의식이 반영될까봐 나는 내 작품에선 교훈이 들어가는 것을 가능하면 배제해 왔지만, 그것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오늘 문득 하게 된다.
장마도, 태풍도 다 지난 새털구름 이는 맑은 가을 아침, 도봉산 인수봉에서 바라본 서울의 모습은 얼마나 아름답던지…. 바로 우리들이 살고 있는 서울의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