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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판권 교수님] 융합 철학: 낮과 밤사이

[강판권 교수님] 융합 철학: 낮과 밤사이

by 강판권 교수님 2019.09.02

융합은 만남과 만남으로 새로운 것을 창출하는 것이다. 근대사회는 한 영역에서 전문성을 발휘하면 살아남을 수 있었지만 현대사회는 한 영역을 넘어 새로운 영역을 만들어야만 살아남는다. 그런데 세상은 애초부터 융합의 사회다. 융합하지 않고서는 그 어떤 것도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인간이 스스로 한 곳만 고집하면서 살다가 도저히 살아남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융합을 외치고 있다.
낮과 밤은 아주 분명한 현상을 보여준다. 그러나 낮과 밤사이는 낮과 밤에서 볼 수 없는 낯선 풍경을 볼 수 있다. 나는 낮과 밤사이에서 융합의 철학을 발견한다. 낮과 밤사이에는 경계가 아주 모호하다. 융합은 경계가 모호할 때 일어난다. 경계가 분명하면 절대 융합을 만들 수 없다. 자신만의 입장을 고집하기 때문이다. 전통시대에 낮과 밤사이에 결혼을 치른 것도 낮의 양과 밤의 음이 만나는 시점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음과 양의 결혼을 통해 후손이 탄생하듯이, 낮과 밤사이에 새로운 것이 탄생한다.
낮과 밤사이에는 현상이 훨씬 선명하게 드러날 때가 있다. 빛이 강한 낮에는 그림자를 만들기 때문에 사물의 전체를 볼 수 없고, 밤에는 어두워서 사물을 제대로 알 수 없다. 그러나 낮과 밤사이에는 사물의 전제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내가 이 시간대를 즐기는 것도 하루 중에 사물의 전체를 볼 수 있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특히 나는 낮과 밤사이 산의 자태를 즐긴다. 이 즈음의 산을 보면 등성이가 아주 선명하다. 산등성이가 선명하게 드러나면 낮에 보던 산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융합도 이런 과정에서 탄생한다.
현실은 언제나 융합이 일어나지만 인간의 삶은 여전히 융합과 거리가 멀다. 사회 곳곳에서 단절의 고통에서 신음하는 소리가 가득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장 행복한 삶은 가장 현실적으로 사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현실 속에 살면서도 현실을 부정하는 이중적인 태도에 익숙하다. 대부분 사람들은 매일 현실과 부딪치면서 살아가지만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다. 그 이유는 세상의 이치를 이해하지 못한 채 살아가기 때문이다. 행복하게 사는 방법은 많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세상의 이치를 아는 일이다. 세상의 이치를 모르고 살면 열심히 살아도 스스로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힘들다. 융합의 세상에 살면서 융합의 사고를 갖지 못하면 하루하루 힘든 시간을 보내야만 한다. 매일 일어나는 낮과 밤의 현상은 융합의 철학을 보여주지만 낮과 밤을 경험하는 인간은 그 원리를 이해하지 못한다. 직접 경험하면서도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만큼 안타까운 것도 없다. 더욱이 자신이 경험하면서도 원리를 다른 곳에서 찾는 경우도 아주 많다. 원리를 연구하는 사람들조차도 자신이 경험한 것보다는 다른 연구자들의 방법을 인용하는데 익숙하다. 융합과 관련 책만 해도 수없이 많지만 정작 일상의 경험을 이론으로 구축한 사례는 아주 드물다.
융합의 사고는 경계를 허물어야 가능하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그 누구도 자신의 생각에 간섭하지 않는데도 스스로 경계를 짓는데 익숙하다. 그래서 상대방이 조금만 낯선 생각을 해도 인정하지 못하고 거부한다. 현재 우리 사회의 갈등도 대부분 융합의 사고가 부족해서 발생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