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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 박사님] 향낭

[김민정 박사님] 향낭

by 김민정 박사님 2019.09.23

차오른 맑은 향기 쉴 새 없이 퍼내서
빈자의 주린 가슴 넘치도록 채워 주고
먼 길을 떠나는 성자/ 온몸이 향낭이었다

지천명 들어서도 콩알만 한 향낭이 없어
한 줄 향기조차 남에게 주지 못한 나는
지천에 흐드러지게 핀 잡초도 못 되었거니

비울 것 다 비워서 더 비울 것도 없는 날
오두막에 홀로 앉아 향낭이 되고 싶다
천년쯤 향기가 피고/ 천년쯤 눈 내리고…
- 김강호, 「향낭」전문

향을 쌌던 종이에서는 향내가 나고, 생선을 쌌던 종이에서는 생선냄새가 난다는 말이 있다. 그렇다면 우리 삶에서 남길 수 있는 향기는 어떤 것일까? 시를 쓰는 사람에게 있어서 향낭이란 아름다운 시작품으로 사람들의 감정을 정화해 주든가, 사회의 문제점들을 지적하여 올바르게 가도록 하는 것이 아닐까?
시 한 편으로 삶의 고독을 치유할 수도 있고, 시 한편으로 절망을 이겨내고 희망을 갖고 살 수도 있다. 푸쉬킨의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 슬퍼하거나 노여워 말라. // 슬픔의 날을 참고 견디면/ 머지않아 기쁨이 날이 오리니// 현재는 언제나 슬프고 괴로운 것/ 마음은 언제나 미래에 사는 것// 그리고 또 지나간 것은/ 항상 그리워지는 법이니.(「삶」 전문)”란 시를 읽으며, 그렇게 살겠다고 생각했다. 또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을 외우며 정말 잘 선택하여 먼 훗날 후회하지 않는 삶의 길을 선택하겠다고 결심한 적도 있었다.
또 삶이 힘겹게 느껴질 때 롱펠로우의 ‘인생찬가’는 나에게 얼마나 큰 위로를 주었던가. “슬픈 목소리로 내게 말하지 말라./ 인생은 한갖 헛된 꿈에 지나지 않는다고!/ 잠자는 영혼은 죽은 것이다./ 만물은 겉모양 그대로가 아니다.// 인생은 진실이다! 인생은 진지하다!/ 무덤은 그 종말이 될 수는 없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 이 말은 영혼에 대해 한 말은 아니다.// 우리가 가야할 곳, 또한 가는 길은/ 향락도 아니요 슬픔도 아니다./ 저마다 내일이 오늘보다 낫도록/ 행동하는 그것이 목적이요 길이다.// 예술은 길고 세월은 빨리 간다./ 우리의 심장은 튼튼하고 용감하나/ 싸맨 북소리처럼 둔탁하게/ 무덤 향한 장송곡을 치고 있느니.// 이 세상 넓고 넓은 싸움터에서/ 인생의 노영 안에서/ 말 못하고 쫓기는 짐승이 되지 말고/ 싸움에 이기는 영웅이 되라.// 아무리 즐거워도 ‘미래’를 믿지 말라!/ 죽은 ‘과거’는 죽은 채 매장하라!/ 활동하라, 살아있는 ‘현재’에 활동하라!/ 안에는 마음이, 위에는 하느님이 있다!// 위인들의 생애는 우리를 깨우치느니,/ 우리도 장엄한 삶을 이룰 수 있고,/ 우리가 떠나간 시간의 모래 위에/ 발자취를 남길 수가 있느니라.// 그 발자취는 뒷날에 다른 사람이,/ 장엄한 인생의 바다를 건너가다가/ 파선되어 버려진 형제가 보고/ 다시금 용기를 얻게 될지니.// 우리 모두 일어나 일하지 않으려나.// 어떤 운명인들 이겨낼 용기를 지니고,/ 끊임없이 성취하고 계속 추구하면서/ 일하며 기다림을 배우지 않으려나.”
이 시는 읽을 때마다 나에게 희망을 준다. 언젠가 이 보다 더 멋진 작품을 써서 나도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사랑받는 시를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천년쯤 향기가 피고 천년쯤 눈 내리’는 그런 작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