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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 목사님] 누군가를 살리는 손

[한희철 목사님] 누군가를 살리는 손

by 한희철 목사님 2019.09.25

누군가를 만날 때 비록 그를 처음 만난다 해도 내가 만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짐작할 수 있는 기준이 아주 없지가 않습니다. 어떤 이들은 그가 입고 있는 옷차림을 보면 알 수 있다고 하고, 어떤 이들은 그가 웃는 모습을 보거나 목소리를 들으면 알 수 있다고 하고, 어떤 이들은 그가 좋아하는 음식이나 기호 식품을 보면 알 수 있다고 합니다.
경험에서 나온 것이겠지요, 사람의 손도 그런 기준 중의 하나가 아닐까 싶습니다. 누군가를 만나 악수를 하며 그의 손을 잡아보면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느끼게 됩니다. 잠깐 사이지만 손을 잡는 사람에 대한 느낌이 손으로 전해집니다. 따뜻한 손을 가진 이도 있고, 차가운 손을 가진 이도 있습니다. 고운 손을 가진 이도 있고, 거친 손을 가진 이도 있습니다. 손이 작은 이도 있고 큼지막한 손을 가진 이도 있습니다.
고운 손보다는 거친 손에 신뢰가 갑니다. 참나무 껍질처럼 손이 거칠고 손마디에 군살이 박혀 있고, 흙물 풀물이 들어 있는 손은 거짓과는 거리가 먼 사람으로 느껴집니다. 정직하게 땀을 흘리며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주인공 ‘작은나무’가 체로키족 할아버지, 할머니와 자연 속에서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포리스트 카터의 자전적 소설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에는 손에 관한 감동적인 장면이 소개됩니다.
한 번은 냇가에서 고기를 잡던 ‘작은나무’가 독이 바짝 오른 커다란 방울뱀을 코앞에서 마주한 적이 있습니다. 날름거리는 방울뱀의 혀가 얼굴에 닿을 정도의 거리였습니다. 꼼짝없이 죽을 수밖에 없게 된 바로 그 순간, 방울뱀과 ‘작은나무’의 얼굴 사이에 번개처럼 끼어들은 것이 있었습니다.
할아버지의 커다란 손이었습니다. ‘작은나무’의 얼굴 앞으로 끼어들은 할아버지의 손은 바위처럼 꼼짝을 안 했습니다. 마침내 뱀은 눈 깜짝할 사이에 할아버지의 손을 공격합니다. 뱀에게 물린 순간에도 뱀이 충분히 손을 깨물 때까지 할아버지는 손을 움직이지 않습니다. 충분히 물었다 싶었을 때 나머지 한 손으로 뱀의 대가리를 붙잡고는 등골을 부러뜨리며 목을 졸라 죽이지요.
그 날 밤 방울뱀의 독이 퍼질 대로 퍼진 할아버지는 몸이 퉁퉁 부은 채 죽어가기 시작합니다. 바람처럼 달려온 할머니가 아니었다면 할아버지는 그 밤을 넘기지 못했을 겁니다. 할머니가 했던 일은 역시 산에 사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 메추라기를 치마로 잡아 살아있는 메추라기로 독을 빨아내는 치료를 하고선 밤새도록 할아버지 옆에 누워 체온을 지켜드립니다. 벌거벗은 몸으로 말이지요.
할아버지의 커다란 손은 손자를 죽음에서 지켜준 손이었습니다. 그러기 위해 할아버지는 큰 대가를 치러야 했고요. 우리의 손이 누군가를 살려내는 손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손이 말해주는 것이라면 더욱더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