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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 목사님] 시드는 꽃무릇을 보며

[한희철 목사님] 시드는 꽃무릇을 보며

by 한희철 목사님 2019.10.08

계절마다 아름다운 꽃이 피어나고, 사람들은 꽃을 좋아하고 사랑합니다. 꽃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일은 남녀노소의 구별이 없지 싶습니다. 아이는 아이대로, 노인은 노인대로 꽃을 좋아합니다. 꽃을 보면 감탄을 하게 되고, 안으로 움츠러들었던 손을 내밀게 되고, 잊고 있었던 심호흡을 하게 됩니다. 나도 착하게 살아야지, 자신도 모르게 선한 다짐도 하게 됩니다. 꽃을 가까이 두고 싶은 마음 때문이겠지요, 마음에 드는 꽃을 만나면 씨앗을 받거나 사진을 찍거나 꽃의 이름을 메모해 두기도 합니다. 동서고금과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왜 사람들은 꽃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일까요?
꽃을 좋아하는 이유는 저마다 다를 것입니다. 어떤 이는 꽃의 빛깔이 고와서, 어떤 이는 꽃의 다양한 모양에 반해서, 어떤 이는 활짝 웃는 모습에, 어떤 이는 코끝을 찌르는 향기가 좋아서, 어떤 이는 꽃에 담긴 소중한 기억 때문에 꽃을 좋아합니다. 채송화나 과꽃을 보면 어릴 적 고향집이 떠오르니까요.
가만 생각해보면 꽃이 아름다운 데는 숨은 이유가 있습니다. 누구나 공감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말이지요. 꽃이 지기 때문입니다. 아까울 만큼의 시간이 지나면 꽃은 시들고 시든 꽃은 떨어집니다. 그러다가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말지요.
꽃이 진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지금은 싱싱하고 눈부시게 피어있지만 머잖아 시들어 떨어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피어있는 그 순간을 우리는 사랑하는 것이지요. 아마도 한 번 핀 꽃이 시들지 않고 계속 피어있다면, 사람들은 꽃을 좋아하는 대신 싫증을 느낄지도 모를 일입니다.
세월이 간다는 것은 그런 뜻일까요, 함께 이 땅을 살던 이들이 한 사람 한 사람 떠나갑니다. 날아오는 것은 본인이 결혼한다는 소식을 지나, 태어난 아이들 소식을 지나, 자녀들이 결혼한다는 소식을 지나, 마침내는 이 땅을 떠났다는 소식입니다.
때가 되면 이 땅을 떠나는 것이 정한 이치입니다. 누구나 피할 수 없는 길이지요. 이스라엘의 왕 다윗도 죽을 때가 되어 아들 솔로몬에게 “내가 세상 모든 사람들이 가는 길로 가게 되었다”는 말로 유언을 시작합니다. 언젠가는 이 땅을 떠나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길이라면 함께 지내는 시간은 그만큼 소중한 의미를 갖는 것이겠지요.
얼마 전 지인과 함께 꽃무릇 사진을 찍으러 다녀왔습니다. 상사화라고 잘못 알려져 있기도 하지만, 두 꽃은 한 가지 공통점도 있습니다. 잎과 꽃이 만나지 못한다는 점에서 말입니다. 그래서 꽃말도 ‘아픈 사랑’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지요.
꽃무릇을 보러 갔을 때 꽃은 이미 시들고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꽃들은 시들었고, 그늘 쪽의 꽃들이 그나마 환한 웃음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멀리서 보아도 예쁘고 가까이 당겨 보아도 예쁜 존재가 있다는 것은 고마운 일이었습니다. 시든 꽃들 너머로 피어있는 꽃을 찍는 시간은 꽃이 아름다운 이유를 다시 한 번 마음에 새기는 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