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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섭 시인님] 빛바랜 추억의 동춘서커스

[이규섭 시인님] 빛바랜 추억의 동춘서커스

by 이규섭 시인님 2019.10.18

서커스단이 들어오면 읍내는 술렁거렸다. 피에로 복장의 난쟁이와 짙은 화장의 곡예사들이 트럼펫과 북소리에 맞춰 거리를 누비면 가슴이 울렁거렸다. 볼거리가 귀하던 시절 서커스는 환상의 종합예술이다. 그 시절 서커스단은 곡마단이라고도 했다. 마술, 동물 곡예, 신파조의 단막극과 쇼는 황홀했다. 지상 곡예는 아슬아슬하고 하이라이트인 공중곡예는 짜릿한 전율이다. 외줄과 그네를 타는 소녀는 연민과 동경의 대상이었다.
호황을 누리던 서커스단은 영화산업의 성장과 텔레비전 드라마에 밀려 사양길로 접어들었다. 동춘서커스를 마지막 본 것은 27년 전, ‘사라지는 풍물’ 시리즈 취재 때다. 수도권 변두리에 친 낡은 천막을 찾았다. 관객들은 얇은 스펀지 방석이 깔린 바닥에 앉아 공연을 지켜본다. 어린 시절의 광경을 닮았다. 나이 지긋한 어르신 관객이 대부분이다. 쇼와 마술, 통 굴리기 등 아크로바티, 공중 그네 등 3부로 나뉘어 공연을 펼쳤다.
동춘서커스단은 1925년 일본인 서커스단 직원이었던 동춘 박동수 씨가 창단한 대한민국 최초의 서커스단이다. 인기 절정인 60년대엔 배삼룡 이주일 서영춘 등 쟁쟁한 스타들을 배출한 등용문 역할도 했다. 서커스가 쇠락의 길로 접어들자 부초처럼 떠돌던 곡예사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약장수를 따라다니며 묘기를 부리거나 밤무대 등 ‘천막 밖’ 삶을 찾아 떠났다.
박세환 단장은 취재 때 “정부나 대기업의 적극적인 지원이나 서커스 상설공연장이라도 세워줬으면 좋겠다”고 피력했다. 갈수록 서커스가 인기를 잃고 사양화되면서 계속되는 재정난에 2009년 11월 청량리 공연을 마지막으로 폐업을 선언한다. 그해 12월 문화관광부가 동춘서커스단을 전문예술단체로 등록시키면서 기부금을 공개 모금할 수 있게 됐고, 기사회생의 계기가 됐다.
상설공연장은 경기도 안산 대부도 해변에 마련됐지만 관객을 끌어들이기엔 역부족이다. 빛바랜 천막이 바람에 펄럭이고 적막이 감돈다. 주위 환경도 황량하다. 200석 규모의 극장식 좌석은 3분1도 차지 않았다. 1992년 입장료는 어른 3,000원이었으나 지금은 일반 25,000원이다. 무대 조명이 켜지자 남자 곡예사 열 명이 나와 나란히 세운 두 개의 기둥에 원숭이처럼 잽싸게 올라 묘기를 보여준다. 공과 모자 저글링, 길게 늘어뜨린 두 개의 붉은 천을 잡고 남녀가 펼치는 환상의 고공 춤, 두 발로 무거운 도자기 독 굴리기, 얼굴 마스크와 의상이 한꺼번에 바뀌는 변검, 쇠밧줄 위에서 자전거 타기 등 기예가 학예회 장기자랑처럼 95분간 이어졌다. 기대치를 최대한 낮췄는데도 긴장과 박진감을 느낄 수 없다. 무대와 조명, 배경 음악도 낡은 필름처럼 빛이 바랜다. 아련한 향수도 애틋한 추억도 묻어나지 않는다.
곡예사 대부분 중국인들이다. ‘동춘’의 역사는 희석되고 허울뿐인 명맥이다. 목숨을 건 공중곡예는 극한직업으로 배우려는 사람도 드물다. ‘태양의 서커스’ 성공 모델을 모방하기조차 어려운 열악한 여건이다. 러시아 ‘볼쇼이 서커스’와 중국의 ‘베이징 교예단’처럼 국가에서 운영하고 곡예사들을 공무원 대우 해주기를 기대할 수도 없다. 하나뿐인 서커스단을 문화 콘텐트로 살려 존속시킬 방법은 없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