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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 목사님] 이슬 묵상

[한희철 목사님] 이슬 묵상

by 한희철 목사님 2019.11.13

가을로 접어들며 언젠가부터 풀잎 끝엔 이슬이 맺히기 시작했습니다. 사전에서는 이슬을 두고 ‘공기 중의 수증기가 기온이 내려가거나 찬 물체에 부딪힐 때 응결하여 생기는 물방울’이라 설명을 하지만, 풀잎이나 꽃잎 끝에 매달려 있는 이슬은 신비 그 자체입니다. 동그란 물방울이 어찌 흘러 떨어지지 않고 용케 맺혀 있는 것인지, 맑게 빛나는 이슬방울을 볼 때면 절로 감탄을 하게 합니다.
이번 가을을 보내며 이슬을 눈여겨보기로 했습니다. 하루하루 이슬에 관한 짧은 묵상 하나씩을 기록하기 시작한 것이지요. 밤이 지나며 언젠지 모르게 이슬이 맺히듯이 그날그날 이슬에 관한 묵상 하나씩을 이어가는 것도 소중하게 여겨졌습니다. 제 마음에 다가왔던 이슬에 대한 생각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나도 미끄럼을 타고 싶지만, 그러면 꿈이 깰까 봐.’ ‘저만치 당신 고요할수록 이만치 나는 흔들리고’ ‘지극한 마음으로 어둠을 모시는 것은, 빛을 모시는 것과 다르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밤을 지새웠다 애써 말하지 마세요. 별을 품고 단잠에 든 걸요.’ ‘큰 소리에 익숙하다면 당신은 저를 모르실 거예요.’ ‘빗소리 요란한 밤에는 쿨쿨 단잠에 듭니다.’ ‘별빛 서너 줌 노래 서너 곡, 나머지야 당신이 알 테지요.’ ‘아슬아슬한 것을 믿습니다. 흔들리는 것을 신뢰합니다.’ ‘영원을 꿈꾸느냐고요, 허락하신 순간을 사랑할 뿐입니다.’ ‘빛을 품고 사는 것이 얼마나 아슬아슬한 일인지, 그것을 가르쳐 준 이는 당신입니다.’ ‘누군가 대신 울어주는 날엔, 말없이 바라볼 뿐입니다.’ ‘빛을 품고도 고요한, 빛을 품고도 흔들리지 않는.’ ‘너무 쉽게 손을 주진 마세요. 저는 지워질지도 모릅니다.’ ‘잠깐 제 안에 머물렀을 뿐, 빛은 제 것이 아닙니다.’ ‘넓은 세상 보고 싶지 않느냐고요. 제가 꿈꾸는 것은 깊은 세상입니다.’ ‘위태하기보다는 어리석은 일이었어요. 슬며시 까치발을 드는 것 말이지요.’ ‘반짝이는 모든 것이 보물이 아닙니다. 저를 보세요.’ ‘고맙게 배운 것 한 가지, 맑은 것이 단단한 것이었어요.’ ‘머물던 자리 그러하듯 물러난 자리 말끔하게 하소서.’ ‘당신이 거기 있어 고맙습니다. 그냥이요.’ ‘늘 드리는 기도 하나, 나를 지나간 빛이 더렵혀지지 않기를!’ ‘저를 잊으세요, 그것이 저를 고맙게 기억하는 것입니다.’ ‘마음을 비우니 더러는 과분한 손님도 드시더군요.’ ‘제 귀에 또렷했던 것은, 오히려 낮은 목소리였습니다.’ ‘먼 길 걷느라 목말랐지요, 작은 위로가 되고 싶었습니다.’ ‘당신 안에서 시간을 잊는 순간, 나는 영원에 속합니다.’ ‘내가 있어 세상 조금 더 밝아진다면, 그보다 좋은 것이 없겠습니다.’ ‘때가 되면 모두가 사라집니다. 아름다운 세상입니다.’ ‘바라는 것 한 가지, 말없이 왔으니 말없이 가게 하소서.’
소소한 이야기입니다만 누구라도 이슬 이야기가 마음에 닿는다면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입동’이 지났으니 머잖아 눈이 내리겠지요. 누군가 눈 이야기를 들려주면 어떨까요? 추운 겨울밤을 비추는 별 이야기도 좋고요. 봄이 오면 꽃 이야기를 시작해도 좋겠지요.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느샌가 우리 안엔 따뜻한 마음 찾아들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