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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 목사님] 사소하고 소소한 것들이 모여

[한희철 목사님] 사소하고 소소한 것들이 모여

by 한희철 목사님 2019.12.11

토요일 아침이었습니다. 직원회의를 마치고 밖으로 나왔을 때, 뭔가 희끗희끗한 것이 날리고 있었습니다. 주의해서 보지 않으면 눈에 띄지 않을 만큼의 작은 가루였습니다. 걸음을 멈추고서 가만히 바라보니 눈이었습니다. 눈이 작은 가루로 날리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날리는 눈송이 앞에서 아이가 되지 않는 것은 불행한 일입니다. 눈이 오네, 이번 겨울 들어 처음으로 보는 눈이어서 감회가 새로웠는데 생각해보니 마침 그날이 절기로는 ‘대설’, 큰 눈이 온다는 날이었습니다.
그렇게 서서 눈을 감상하고 있을 때 담장 저쪽 끝에 작은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바닥에 있던 참새 몇 마리가 담장 위로 날아오른 것이었습니다. 언제라도 참새들의 날갯짓과 재잘거림은 경쾌하기 그지없습니다. 삶에 지쳐 걸음이 무거운 우리들에게 좀 가볍게 살 수는 없는 거냐고 말을 거는 것 같습니다. 참새들의 가벼운 날갯짓이 희끗희끗 막 날리기 시작하는 눈과 그럴 듯이 어울렸습니다.
참새들은 호기심이 유별나지 싶습니다. 진득하게 한자리에 앉아 있는 것을 보기가 어렵습니다. 책상에 앉아 있을 때 다시 참새 떼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번에는 담장 가까이에 서 있는 해바라기였습니다. 한 해를 보낸 해바라기가 겨울을 맞아 진한 갈색으로 변한 채 여전히 같은 자리에 서 있습니다. 이파리와 씨가 모두 바싹 마른 채 말이지요. 풀포기 하나도, 꽃 하나도, 나무 한 그루도 끝까지 최선을 다한다는 것을 해바라기는 보여줍니다.
참새들이 내려앉은 곳은 해바라기였습니다. 그들은 열심히 해바라기 씨를 쪼아 먹고 있었습니다. 겨울을 맞는 참새들에게는 좋은 양식이자 맛있는 간식이겠지요. 참새들이 움직일 때마다 마른 해바라기 가지도 흔들리고 휘어졌지만, 자신의 품을 찾은 참새들에게 자신이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아낌없이 베풀고 있었습니다.
참새들을 바라보고 있을 때 창문 밖으로 뭔가 하얀 깃털 하나가 바람을 타고 있습니다. 유심히 바라보니 씨앗입니다. 박주가리 씨앗이지 싶은 씨앗 하나가 바람을 타고는 멋진 비행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바람에게 몸을 맡긴 씨앗은 마침내 바람이 나를 내려놓은 그곳에서 또 하나의 싹을 피워 올리겠지요.
자신의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내리기 시작하는 눈발, 가벼운 날갯짓으로 세상을 나는 참새들, 자신을 필요로 하는 참새들에게 끝까지 먹을 것을 내어주는 해바라기, 가장 가벼운 몸으로 하늘을 나는 씨앗, 문득 세상이 아름답게 다가옵니다. 어김없이 가는 시간 속 자신의 때를 따르는 모습이 거룩하게 여겨지기도 합니다.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것은 이처럼 작고 가벼운 것들이었습니다. 거창하고 대단한 것들이 세상을 이끌어가는 것 같지만, 눈여겨보면 오히려 사소해 보이고 소소해 보이는 것들이 모여 세상을 아름답게 합니다. 오늘 우리의 존재가 작고 보잘것없어 보인다 할지라도 낙심하지 말아야 할 충분한 이유가 우리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