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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판권 교수님]공생과 역할

[강판권 교수님]공생과 역할

by 강판권 교수님 2019.12.30

연말은 더불어 삶이 절실한 시기다. 나무 중에서도 큰 나무일수록 더불어 삶을 실천한다. 일상에서 큰 나무가 많은 생명체와 더불어 사는 장면은 쉽게 만날 수 있다. 그래서 큰 나무는 자연생태계에 아주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큰 나무에 공생하는 생명체는 주로 동물이다. 동물 중에서도 새들은 큰 나무의 덕을 가장 많이 본다. 사람들은 일상에서 나무 위 새집을 자주 목격하지만 때론 거침없이 자르는 경우도 적지 않다. 내가 사는 아파트에는 낙우송과의 갈잎큰키나무이자 ‘살아있는 화석’ 메타세쿼이아(이하 메타)가 건물 사이마다 살고 있다. 메타 중에는 텃새인 까치들이 집을 짓고 살고 있다. 그런데 얼마 전 아파트 관리실에서 메타의 줄기를 반 정도 잘라버렸다. 메타를 잘라버린 것은 큰키나무가 넘어지면 아파트에도 좋지 않고 사람을 다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메타가 반 정도 잘리면서 까치집도 한순간에 날아가 버렸다. 까치들은 영문도 모른 채 날벼락을 맞았지만 그 어디에도 하소연할 수가 없다. 우리 주변에는 메타만이 아니라 양버즘나무 위의 새집들이 한순간에 날아가 버리는 현장을 자주 목격한다.
나무를 자르는 사람들은 다른 생명체들이 나무와 더불어 살아가는 것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큰 나무에는 새들만 사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쉽게 만날 수 없는 개미를 비롯한 각종 동물이 더불어 살고 있다. 뱀은 큰 나무에 사는 가장 큰 동물일지도 모른다. 전국의 큰 나무 중에는 뱀이 산다는 얘기를 가진 나무들이 있다. 그중에서도 경상북도 안동시의 천연기념물 제175호 용계동 은행나무에는 실제 뱀이 살고 있다. 이곳의 은행나무는 안동의 임하댐이 생기면서 수몰 위기에 처했지만 흙을 위로 올려 살아남았다. 한 그루의 은행나무를 살리는 데 엄청난 돈이 들었지만 이곳의 은행나무는 우리나라의 나무 인식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는 점에서 천연기념물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이곳의 은행나무는 우리나라 천연기념물 나무 중에서 경기도 양평군 용문사 천연기념물 은행나무 다음으로 나이도 많고 키도 크다. 수많은 의족으로 살아가고 있는 이곳 은행나무의 37미터에 달하는 높은 키와 14미터에 달하는 넓은 가슴은 뱀을 비롯한 많은 생명체들의 따뜻한 보금자리다.
큰 나무들은 오랜 세월을 견디는 과정에서 아주 많은 상처를 입었다. 그러나 큰 나무의 상처는 다른 생명체들에게는 보금자리 역할을 한다. 간혹 큰 나무의 상처 자리에 흙이 쌓이면 풀이나 다른 나무들이 살곤 한다. 큰 나무의 상처 자리에 살아가는 많은 생명체들은 큰 나무 덕분에 또 다른 생명체들과 더불어 살아간다. 이는 자신의 상처마저 다른 생명체들에게 기꺼이 내주는 큰 나무의 삶이 다른 생명체들의 삶에도 큰 영향을 준다는 증거다. 큰 나무의 삶은 누군가에게 받기만을 바라는 존재들에게 감동을 선사한다. 그러나 큰 나무들은 다른 존재들에게 큰 감동을 선사하고서도 생색내지 않는다. 감동은 더불어 살면서도 결코 생색내지 않아야 한다. 생색내는 순간, 감동은 연기처럼 사라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