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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섭 시인님] “선불카드로 호텔 이용 안 돼요”

[이규섭 시인님] “선불카드로 호텔 이용 안 돼요”

by 이규섭 시인님 2020.05.21

“백화점과 대형마트 이용은 안 됩니다”
주민센터 직원이 서울시 재난 긴급생활비 선불(기프트) 카드를 지급하며 안내한다. 2인 가족 기준 30만 원이 충전된 카드다. 안내장을 챙겨 버스에 탄 뒤 자리를 잡고 살펴봤다. 카드 이용 방법과 사용 가능 기간, 잔액조회 방법 등을 친절하게 기록해 놓았다. ‘서울시 지정 이용 제한 업종’ 목록을 보니 쓴웃음이 절로 나온다. 31개 업종 가운데 첫 번째가 특급호텔이다. 룸살롱, 나이트클럽, 카바레 등 유흥업소와 항공사, 고속버스, 철도 사용도 안 된다. 백화점과 대형마트도 마찬가지다.
이 돈으로 호텔을 가고 실외 골프장을 간다는 게 가당키나 한 것인가. 전형적인 탁상공론이다. 이런 기준을 마련하려고 담당 공무원은 다양한 정보를 바탕으로 골똘히 기안했을 게다. 회의를 통해 의견을 모으고 결제 과정을 거치면서 수정 보완한 결과다.
서울시는 중위소득 100% 이하 191만 가구 중 정부 지원을 받는 73만 가구를 뺀 117만 가구에 구성원 수에 따라 30만∼50만 원씩 지원한다. 서울시민은 서울사랑상품권과 선불카드 중 하나를 선택하여 신청하지만 사용처가 달라 혼선을 빚는다. 서울사랑상품권은 소상공인과 지역 경제 활성화에 초점을 두고 설계하여 사용처와 지역이 제한적이다.
대형마트라도 이마트와 롯데마트는 안 되고 업계 2위인 홈플러스에선 사용할 수 있어 형편상 논란이 일었다. 논란이 불거지자 뒤늦게 사용할 수 없도록 시스템을 바꿨다. 롯데마트와 하이마트에서 국산 전자제품을 사는 건 안 되는데, 애플 매장에서 수입품을 사는 건 된다. 대형마트에서 중소기업들이 납품하는 생필품을 사는 건 안 되는데, 골프전문점에서 골프채 사는 건 가능하다. 얼굴 성형수술도 가능하다니 ‘얼굴이 재난이냐’는 비아냥을 듣는다.
정부가 지급한 긴급재난지원금 사용처도 혼란이 가중되기는 마찬가지다. 백화점 내 샤넬 매장에서는 지원금을 사용할 수 없다. 백화점 밖 샤넬 플래그십 스토어에선 개인 돈을 보태 명품 가방을 살 수 있다. 소상공인을 돕자고 준 지원금으로 명품 구입을 가능케 한 것은 모순이다. ‘배달의 민족’은 앱 직접 결제는 불가능하지만 대면 결제는 가능하다.
더 큰 불만은 선불카드와 상품권이 나돌면서 주부들은 “물가가 올라도 너무 많이 올랐다”라고 한숨짓는다. 동네 재래시장을 한 바퀴 돌며 부식 가격을 체크해 봤다. 취나물, 참나물 등 채소류가 600g에 3000원 하던 게 5000원으로 올랐다. 햇감자는 5개 4000원 받는다. 두부 한 모도 4500원으로 어안이 벙벙하다. 선불카드와 상품권은 코로나19 상황으로 생계 절벽에 직면한 시민들의 고통을 덜어주고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발급했다는 취지가 무색해진다.
코로나 영향으로 소득이 줄어든 자식들은 가정의 달 용돈을 제대로 챙겨드리지 못해 죄송해한다.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부담될까 봐 “올해는 재난지원금이 나오니 신경 쓰지 말라”라고 한다. 재난지원금이 용돈으로 전락한 씁쓸한 현상이다. 재난 긴급생활비 지원으로 가계 부담이 얼마나 줄어들고, 나라 경제가 얼마나 활성화될지 모르겠지만 후대에게 부담 지우는 공돈(?) 받는 마음은 착잡하고 무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