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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섭 시인님] 따뜻한 소통 어부바

[이규섭 시인님] 따뜻한 소통 어부바

by 이규섭 시인님 2020.06.25

손자를 가슴에 안고 근린공원에 나간 건 목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던 유아기 때다. 어둠이 깔린 시간에 나간 건 남세스러움을 피하려는 의도보다 손자의 심장 박동을 깊이 느끼고 싶어서다. 쌔근쌔근 고른 숨소리와 함께 심장 뛰는 소리가 고요 속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말 귀를 알아들을 때쯤 손자를 업고 골목을 몇 바퀴 돌면서 “두원이는 착해요, 건강하게 자라요” 4.3조로 읊조리면 얼굴을 슬며시 등에 기댄다.
할아버지 등에 업히는 게 부끄러움을 알 때 쯤 업어달라는 표현 대신 골목 상점 앞 계단에 앉아 “다리 아프다”고 한다. “사람들이 보면 다 큰 아이가 할아버지에게 업혔네.” 흉을 본다고 하면 “눈 감을 테니 할아버지는 뛰면 된다”는 처방이다.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집에 와 자는 날 밤엔 포대기를 두르고 업어 달라 졸랐다. 손자에게 따뜻한 등을 내주는 게 깊은 사랑의 표현이라 생각하기에 “버릇 나빠진다.”는 아내의 지청구를 귀전으로 흘렸다.
장사익이 노래한 ‘꽃구경’의 어부바는 가슴 저리다. 세상이 온통 꽃 핀 봄날, 어머니는 꽃구경 가자는 아들 등에 업힌다. 숲길이 깊어지자 어머니는 솔잎을 한 움큼씩 따서 가는 길 뒤에다 뿌린다. “어머니 지금 뭐 하신대요∼” “아들아 너 혼자 내려갈 때 길 잃고 헤맬까 걱정이구나” 꽃구경 핑계로 고려장 당하는 건 아닌지 말을 잃어버려도 자식이 길 잃을까 걱정하여 솔잎을 뿌리는 모정이 한 서린 가락에 실려 심금을 울린다.
한국인에게는 어부바 유전자가 있다. 아이에게 가깝게 다가가려면 업어주는 게 최고다. 아이가 칭얼거릴 때도 업고 어르고 달래며 엉덩이 추임새를 넣는다. 포대기는 엄마와 아이의 유대를 잇는 끈이다. 희수나 미수 잔치 때 자식이 하객들 앞에서 부모를 업는 행위는 낳아주고 키워준 데 대한 감사와 고마움의 공개 표현이다.
신용협동조합(이하 신협)의 창립 60주년 기념 ‘어부바’ 광고가 코로나에 지친 사람들의 마음을 따듯하게 어부바해준다. 혼자 보다 둘이 가자는 말, 대신 발이 되어주겠다는 말, 체온을 함께 나눈다는 말, 힘들 때 같이 가자는 말, 같은 방향을 바라보자는 말을 하며 아내와 노모, 동생과 아이를 업고 소중한 인연들을 다양하게 어부바한다. 업는 사람의 따뜻한 마음과 업히는 사람의 고마움과 행복이 동시에 묻어난다. 신협은 ‘평생 어부바’라는 슬로건 아래 소외계층에게 언제든 따뜻한 등을 내주겠다는 금융철학을 한국적 정서로 풀어냈다.
신협과 인연을 맺은 건 사보에 ‘일상탈출’ 콘텐츠로 여행지 소개를 하면서다. 16년이 흘렀는데도 사보를 보내준다. 그 때는 타블로이드판 신문 형태였고, 지금은 매거진 체제로 바뀌었다. 최근호에 이어령 선생과의 인터뷰를 통해 ‘어부바의 문화 유전자’를 소개하여 관심 있게 읽었다.
그는 “어부바를 한다는 것은 옛말에 담겨 있던 ‘너 좋고, 나좋고’의 정서가 녹아 독특한 상호작용을 일으키는 순간”이라고 풀이했다. “업히는 사람과 업는 사람 사이에는 관계의 상호성이 만들어져 돈독해 짐을 의미한다. 어부바는 따뜻한 등을 통해 마음을 소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