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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판권 교수님] 김밥: 한국 융합정신의 전형

[강판권 교수님] 김밥: 한국 융합정신의 전형

by 강판권 교수님 2020.07.31

김밥은 한국의 정신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음식이다. 쌀밥과 김의 만남은 한국의 육지 농산물과 바다 해산물의 융합이기 때문이다. 쌀밥은 우리나라가 구석기 말부터 시작한 벼농사의 산물이고, 김은 바다의 산물이다. 쌀밥과 김은 그 자체로 먹을 수도 있지만 서로 만나야만 하나의 음식으로 탄생한다. 내가 김밥에 주목하는 것은 김밥이 단순히 음식이 아니라 한국인의 정신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사회는 융합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융합은 단순히 다른 것과 다른 것의 만남이 아니라 새로운 것을 창조해야 한다. 다른 것과 다른 것의 단순한 만남은 융합이 아니라 연계다. 쌀밥과 김의 만남으로 탄생한 김밥은 연계가 아니라 융합이다. 김밥이 융합인 까닭은 김과 밥으로 끝나지 않고 무한 창조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생산하는 김밥의 종류는 셀 수 없이 많다. 김밥의 종류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무한 변신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김밥에 들어가는 재료만 해도 한두 가지에서 열 가지 이상까지다.
김밥이 융합을 낳을 수 있는 것은 모양이 둥글기 때문이다. 물론 김밥의 모양에는 삼각형도 있고, 네모도 있지만, 둥근 모양은 김밥 모양의 전형이자 융합의 틀이다. 삼각 김밥은 모양 탓에 다양한 재료를 활용하는 데 한계가 있지만 둥근 김밥은 재료의 활용에 제한이 없다. 둥근 김밥은 어떤 재료든 관계없이 수용할 수 있다. 김밥이 한국인의 인기 음식인 까닭은 단순히 먹는 데 편리해서가 아니라 영양 측면에서도 그 어떤 음식과 비교해도 손색없기 때문이다.
내가 김밥을 예찬하는 것은 아주 즐겨먹기 때문만이 아니라 김밥 속에 숨겨진 융합 정신이 한국의 미래를 결정할 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융합 정신은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때만이 발휘할 수 있다. 한국인은 유사 이래 변화에 능동적으로 적응한 전통을 갖고 있다. 이제 비빔밥과 더불어 김밥은 한국인의 음식을 넘어 세계인의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김밥은 우리나라에서 생산한 전통 재료로 만든다는 점에서도 높이 평가할 수 있다. 게다가 김밥에는 한국 전통의 재료만이 아니라 외국에서 수입한 재료도 함께 사용할 수 있다. 김밥은 국산이든 수입산이든 구애받지 않고 사람들의 기호에 맞게 만들 수 있다.
김밥에 담긴 융합 정신을 지속하려면 무엇보다도 양질의 김과 밥을 확보해야만 한다. 그러나 한반도의 바다는 날로 오염이 심해지고, 밥을 생산하는 벼논은 해마다 줄어들고 있다. 특히 기후 변화는 김과 밥을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조건을 악화시키고 있다. 이런 점에서 보면 김밥은 한국의 미래를 가늠하는 중요한 지표다. 김밥을 먹기 위해서는 한반도의 자연 생태를 잘 보존해야 하지만, 그 누구도 김밥을 먹으면서 한반도의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어떻게 하면 맛난 김밥을 먹을 수 있을까만 생각할 뿐이다. 더욱이 언제까지나 김밥은 아무 문제 없이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반도의 상황이 바뀌면 언제나 쉽게 먹을 수 있는 김밥도 사라질지 모른다. 지금은 일상이 언제든 바뀔 수 있는 시대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