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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섭 시인님] 세상과의 이별 짧고 검소하게

[이규섭 시인님] 세상과의 이별 짧고 검소하게

by 이규섭 시인님 2020.09.11

102세로 별세한 망인의 조문은 처음이다. 100세 시대를 실감한다. 옛 직장 동료의 모친 장례식장은 코로나로 대면 조문이 줄었음에도 조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어머니를 여의었으니 상심이 크시겠다”라는 애도의 말보다 “그동안 수발하느라 고생이 많았다”라는 위로의 말을 전한다.
장례식장 특유의 숙연하고 무거운 분위기가 아니다. “호상(好喪)이니 밴드를 불러야 한다”라는 우스개가 나왔다. 98세 노모를 모시고 있는 60대 후배는 “기억력이 나보다 좋다”면서 “어무이, 이제 그만 죽으소” 했더니 “누구 좋으라고 죽냐”라고 응수하더라고 해 웃었다. 망인과 동갑인 102세 어머니를 둔 80대 문상객은 “어머니 보다 먼저 죽을까 봐 걱정이다”라고 털어놓아 공감이 간다.
수명이 짧던 시절엔 환갑 지나면 애경사 참석을 자제했다. 늙고 추한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배려다. 나이 들어서도 조문을 가야 하는 건 망인과의 각별한 인연 때문이다. 이런 경우 조문객이나 상주 모두 어색하다. 상주에게 망인과의 관계를 설명하는 일은 곤혹스럽고 상주도 난감해하기는 마찬가지다. 이와 반대로 망인은 몰라도 상주 외의 인연에 얽혀 문상하게 된다.
코로나로 장례식장 분위기가 많이 변했다. 확진자가 늘 때 종합병원 장례식장을 찾았더니 공항 검색대를 통과하듯 엄격했다. 열화상 카메라를 비치해 놓고도 체온계로 열을 잰다. 연락망을 기재하니 손목에 출입자 식별용 노란 비닐 벨트를 감아준다. 손 소독을 한 뒤 들어갔다. 상주와 마스크를 한 채 짧게 문상한다. 음식을 제공하지 않는 식당은 텅 비었다. 나올 때 선물 꾸러미를 받았는데 묵직하다. 돌아와 풀어보니 맛소금 세트다.
이를 계기로 장례문화가 바뀌었으면 좋겠다. 일본은 이미 10년 전 ‘작은 장례식’이 태동했다. 초고령화 사회와 1인 가구 증가라는 현실과 맞물려 해마다 크게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작은 장례식은 장례 과정을 대부분 생략하고 바로 화장을 하는 것이 가장 간단한 장례다. 밤샘 없이 하루 만에 장례를 끝내는 작은 하루장, 조문객 수를 줄인 작은 가족장이다.
고인이 생전에 가족끼리만 보내고 싶다고 했거나 폐를 끼치기 싫다고 했다든지 장례식에 돈을 들이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주로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에선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적극적으로 준비하는 활동을 종활(終活)이라 한다. 자신의 생을 기록하는 ‘엔딩 노트’를 쓰고 생전에 지인들과 사전 장례식을 치르기도 한다. 이른바 셀프 장례 체험 프로그램이다. 유언장 쓰기, 장례 절차, 법률자문 등을 돕는 서비스가 활성화돼 있다.
우리나라도 가족장, 빈소를 하루만 차리는 ‘하루장’, 빈소를 차리지 않고 장례 절차를 진행하는 ‘무빈소 장례식’ 등 ‘작은 장례식’이 늘어나고 있다니 바람직한 현상이다. 소수의 조문객만 모여 조용하게 장례를 치르고, 불필요한 부대비용을 줄이자는 취지다. 작은 장례식만을 전문으로 하는 상조회사도 생겼다. 작은 장례식은 92.2%가 공감한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나왔다. 세상과의 이별 의식은 짧고 검소할수록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