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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 박사님] 아파트와 나팔꽃

[김민정 박사님] 아파트와 나팔꽃

by 김민정 박사님 2020.09.14

한 줌 흙을 모아 울타리를 얹었더니
묻어 온 꽃씨 한 톨 줄기줄기 뻗어 올라
이 아침 청아한 음성 기상나팔 상큼하다

시도 때도 없이 귀를 찢는 소음 속에
행여 꽃 떨어질라 입술까지 다칠라
사르르 하늘 문 열면 싱그러운 바람, 바람

층층이 어우러져 줄을 타고 감고 도는
한 매듭 꽃 한 송이 꽃 진 자리 열매 한 알
저마다 작은 꽃등을 별빛처럼 밝힌 창문
- 이동륜 「아파트와 나팔꽃」

삶은 갈수록 삭막해지는데 맑은 꽃 한 송이에 대한 감상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끈질긴 코로나 바이러스로 몸도 마음도 지쳐 가는 가운데서도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게릴라성 폭우를 퍼붓던 장마가 오고, 거대한 태풍이 지나갔다. 수백억의 재산 피해를 낸 제주와 남해와 동해와 울릉도는 아랑곳없이 태풍이 지나가고 난 하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 푸르고 맑다. 그 가운데 나팔꽃이 피고 해바라기가 피고 코스모스가 핀다.
나팔꽃은 생명력이 참 강한 꽃이다. 이 시조에서처럼 아파트 가에도 잘 피고, 창가에 심어두든 삭막한 땅에 심어두든 어디서든 꽃을 피운다. 올봄 학교 화단에 꽃씨를 뿌렸더니 가물어서인지 꽃씨가 한 달이 넘어서 겨우 싹이 텄다. 그러고도 자라지 않고 꼬맹이 식물로 있더니 거기에 언제부터인가 꽃이 피기 시작했다. 줄기도 뻗지 않은 채 땅꼬마 식물로 있더니 꽃이 피기 시작하고 마침내 줄기를 뻗어가기 시작했다. 나팔꽃 송이가 그 꽃을 피운 식물에 비해 얼마나 크게 느껴지던지 기특했다. 그것이 하도 기특해서 비 오는 날 나팔꽃에 대한 한 편의 시조를 써 보았다.
“비에 젖자 하나둘씩 잎새들이 말을 건다/ 어제의 뙤약볕도 나쁜 건 아니였어/ 때로는 목이 탔지만 그도 참아 내야지// 언제라도 절정이다 이 아침 나팔꽃은/ 나 또한 마찬가지 언제나 절정이다/ 이렇게 푸름이 내게 사무치게 안긴다면” - 졸시, 「유월을 풀다」.
나팔꽃은 아침이면 피고 정오쯤 되어 볕이 강해지면 지기 시작한다. 꽃이 줄기나 잎에 비해 큰 만큼 많은 물기가 필요한 것 같다. 햇볕이 강해져서 물기가 증발되기 시작하면 금방 시들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흐리거나 비가 오는 날은 좀 더 오래 피어 있다.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지고, 그다음 날엔 다른 꽃이 핀다. 단순한 것인데, 시골에서 어려서부터 나팔꽃이 피는 것을 보고 자란 나는 그런 것쯤은 누구나 다 아는 내용인 줄 알았다.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지고 마는/ 나팔꽃보다 짧은 사랑아~~”라는 유행가도 있어서…. 그런데 동료 선생님들은 그걸 모르고 계셔서 깜짝 놀랐다. 아마 지금도 많은 사람들은 그러한 작은 상식을 모르고 있는 것 같다. 나팔꽃과 무궁화는 매일매일 새로운 꽃이 피고, 그 날로 지는 꽃이다.
나팔꽃과 함께 많은 해바라기를 심었지만, 막상 살아남은 건 햇볕이 잘 드는 곳에 심었던 몇 송이뿐이다. 그래도 그 몇 송이에 가지마다 꽃망울이 맺혀 생각보다 많은 꽃을 피우고 있어 신통할 뿐이다. 소피아 로렌이 주인공으로 나왔던 《해바라기》 영화를 보고 많이 울었던 기억이 새롭다. 남편을 찾아가던 길에 끝없이 펼쳐지던 해바라기 꽃밭…. 그렇게 많지는 않더라도 더욱 아름답게 피어 답답한 요즘의 생활에 작은 활력소라도 되어주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