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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은 대표님] 하루 두 번 면도하는 남자

[김재은 대표님] 하루 두 번 면도하는 남자

by 김재은 대표님 2020.09.22

한 남자가 거울을 보며 비장한 모습으로 서 있다. 충무공의 장도와는 전혀 다르지만 칼을 들고 있다. 면도기의 날도 칼 종류이니 틀린 말은 아니다. 얼굴에 칼을 댄다. 오호~ 콧노래까지 부른다. 다행이다. 요즘같이 어려운 시절, 투덜대지 않는 것만 해도 어디인가.
그나저나 뭐가 그리 바쁜지 모르겠지만 하루에 한 번이라도 자신의 얼굴을 제대로 바라보며 사는 것이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그런데 면도를 할 때라도 얼굴을 볼 수 있으니 참 좋다. 여자는 화장할 때 남자는 면도할 때, 이 정도면 공평한 삶이렷다.
그런데 콧노래를 부르며 면도하는 저 남자, 저녁에 다시 거울 앞에 서는 게 아닌가. 이번에 비장감보다는 편안함이 묻어난다. 아니 피곤감이라고 해야 맞을지도 모르겠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아침의 생기발랄했던 얼굴이 저녁엔 조금은 지친 모습이니 스스로를 안쓰럽게 생각하지 않을까. 아니 시시각각 변하는 자신의 모습에 오히려 ‘살아있음’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하루 한 번 면도하는 남자보다 두 번 면도하는 남자가 난 좋다. 단순히 얼굴을 두 번 보는 것 때문만은 아니다. 하루를 열었으면 마무리해야 하듯이 두 번의 면도를 통해 삶과 세상살이의 이치를 깨달을 수 있을 것 같아서다. 생과 사, 명암과 흑백, 행복과 불행 등과 희로애락의 원리가 면도하는 중에 녹아있을 것 같아서다.
무슨 면도 하나 가지고 그리 요란을 떠냐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두 번의 면도를 하는 몇 분의 시간이라도 내가 거기에 깨어있다면 삶의 이치와 원리가 내 품 안으로 들어올 수도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양의 털을 깎고 젖소의 우유를 짜듯 면도는 누가 뭐래든 일상의 성스러운 의식이다. 어쩌면 내가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최소한의 기회이자 시간일 것이다. 이렇듯 면도할 수 있다는 것이 바로 내가 살아있다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랴.
그러기에 하루의 시작으로 여명을 맞듯이 면도하는 순간은 명징한 시간이자 나의 마음을 새롭게 여는 시간이다. 또한 면도를 통해 자신의 얼굴과 친해지면(?) 넥타이를 매거나 모자를 쓸 때도 용기가 없이도 쑥스럽지 않게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수시로 기꺼이 즐겁게 자신의 얼굴을 바라볼 기회를 만들게 될 것이고. 무엇보다 나를 사랑하게 되는 결정적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전 세계의 남성 중 75%가 면도를 하고, 턱 주위의 체모, 턱수염은 그 수가 2만 5천 개에 달한다고 한다. 턱수염이 한 달을 기준으로 평균 1.5cm씩 자라니, 대부분의 남성이 평생 동안 깎는 턱수염 길이를 합하면 200km에 이르니 놀랍지 않은가. 무려 30,000년이 된 인류의 습관인 면도, 이쯤 되면 개똥철학을 넘어선 ‘면도 깨달음’이라도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이 땅의 남자들이여, 이제 하루에 두 번 면도를 하자! 깨달음이 두 배, 삶의 즐거움도 두 배, 엄청난 효과를 보장하겠다. 행복 디자이너의 약간은 뻥인 제안에 응할 님들 손드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