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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은 대표님] 음미체적인 삶을 위하여

[김재은 대표님] 음미체적인 삶을 위하여

by 김재은 대표님 2022.04.05

이 눈부신 봄날에 먹고산다는 것을 생각한다. 식물처럼 광합성을 통해 스스로 양분을 만들 수 없으니 인생에서 먹고사는 것은 절체절명의 중요한 포인트이다. 생존은 모든 존재의 고갱이니까. 거기에 생존을 넘어서는 욕망까지 끝없이 일어나고 있으니 삶은 다층적이고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며칠 전 고향집에 갔다가 집안 구석에서 5원짜리 동전을 발견했다. 발행연도를 보니 1969년, 코흘리개 행복디자이너가 초등학교(당시는 국민학교)에 입학한 해이다. 나도 모르게 50년도 넘는 시간을 거슬러 타임머신을 탔다.
초등학교 3학년 때쯤이었을까. 봄 소풍 가는 날, 가난한 농부의 아들이라 군것질도 어림없던 시절, 소풍을 핑계 삼아 어머니께 5원만 더 달라고 울면서 떼를 썼던 기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5천 원, 5백 원도 아닌 5원이라니…
보릿고개를 간신히 버텨 겨우 굶주림만 면하던 때였으니 이런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해야 할 것은 오로지 공부뿐이었다. 더구나 참고서는 언감생심, 오로지 교과서로만 공부를 해야 했으니 ‘다른 삶’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이른 바, 국영수 성공 인생을 꿈꾸면서 말이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무려 인생 40년 가까이 지난 2000년대 초, 문득 머리를 후려친 화두 하나가 있었다. 왜 사느냐 하는 것? 무엇을 위해 사느냐 하는 것이다.
그러려니 하며 무시하고 방치해 온 삶이 그대로 눈에 밟혔다. 고통의 현실에 쩔쩔매며 무심코 써 내려간 행복한 월요편지를 필두로 내 삶에 작은 균열을 내기 시작했다. ‘국영수’를 넘어서는 다른 삶과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바로 ‘음미체’의 삶이다. 다시 말하면 앞만 보고 내달리는 삶이 아니라 잠시 멈춰 주위를 기웃거리는 삶 말이다. 오로지 ‘버는’ 것에만 매몰되는 게 아니라 내가 가진 것을 기꺼이 쓰고, 내 앞의 삶을 그대로 즐기는 그런 삶 말이다.
우리가 경제활동을 하는 것은 생존을 넘어 ‘여가’를 즐기기 위한 것, ‘버는’ 것은 ‘쓰고 즐기는’ 삶을 위한 과정임에도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버는’것이 목적이 되어버렸다. 너무 오랫동안 ‘전도(顚倒)’된 삶을 살아온 것이다. 다른 삶, 새로운 삶, 즐겁고 행복한 삶을 잊은 채로 나도 모르게 그렇게.
여행이나 취미활동, 자원봉사 등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며 살아도 짧은 인생인데, 잉여의 돈을 위해 너무 많은 시간을 쓰고 있다는 것만큼 안타깝고 어리석은 일은 없을 것이다.
마음을 쓰고 몸을 쓰며 삶을 느끼고 경험하는 음미체적인 삶은 그대로 ‘락(樂)’의 삶이자, 나누고 함께 하는 삶이다. 이 세상에 와서 이런 삶을 살지 않으면 직무유기이자 실패한 삶이 아닐까.
늦지 않았다. 이제라도 내 삶에 ‘음미체’적인 삶의 자리를 내어주어야 한다. 진정으로 라이프 디자인이 필요한 것이다. 부와 명예, 권력 중심의 국영수적 삶에서 지혜의 文史哲(문학 역사 철학), 행복이 솟아나는 음미체(音美體)의 삶으로 대이동을 해야 한다. 누구도 아닌 나 자신과, 함께 살아가는 이웃들의 지속 가능한 행복을 위하여. 봄꽃들이 만발한 4월, 그런 삶을 누리기 딱 좋은 봄날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