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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 목사님] 두 팔을 벌려 서로를 끌어안을 일이다

[한희철 목사님] 두 팔을 벌려 서로를 끌어안을 일이다

by 한희철 목사님 2022.04.06

‘환대’라는 말은 자주 쓰는 말이 아니지만, 그럴수록 그 의미는 소중하게 여겨집니다. ‘환대’(歡待)는 ‘기쁠 환’에 ‘기다릴 대’가 합해진 말로, 사전에서는 ‘반갑게 맞아 정성껏 후하게 대접함’이라고 설명을 합니다. 억지로가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 누군가를 맞이하여 정성으로 대접하는 것이니, 환대는 받는 이나 베푸는 이 모두에게 큰 기쁨이 되는 일이지요.
오래전 ‘환대’의 의미를 생각하며 쓴 짤막한 글이 있습니다. “누군가 상처 입은 모습으로 돌아왔다면 가슴을 열고 따뜻하게 맞으시라. 다친 날갯죽지로 둥지에 돌아온 것은 그의 최선이었을 터이니.” 상처 입은 모습으로, 초라하고 지친 모습으로 돌아오면 무시하기가 쉽습니다. 하지만 그런 모습을 하고도 둥지를 찾은 것은 그의 최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친 날갯죽지를 한 채 둥지로 돌아온 이들 중에는 하루의 노동을 술로 달랜 아버지가 있을 수도 있고,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아직도 취직을 하지 못해 마음이 무거운 자식도 있을 수 있는 일, 둥지로 돌아오는 걸음이 무거울수록 누군가 그를 따뜻하게 맞는 것은 그만큼 따뜻한 위로와 사랑이 되겠지요. 상처를 입어 몸과 마음이 지쳤다 해도 돌아갈 둥지가 있다는 것은 여간 큰 고마움이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이제는 손으로 편지를 쓰는 일이 매우 드문 일이 되었습니다만, 편지를 쓸 때 로마 사람들이 즐겨 사용한 인사말이 있다고 합니다. ‘시 발레스 베네, 발레오!’라는 말인데, ‘당신이 평안하면, 나도 평안합니다!’ 하는 뜻입니다. 당신이 평안해야 내가 평안할 수 있다는, 당신이 평안하지 못하면 나도 평안할 수가 없다는, 당신과 나는 남이 아니어서 떼려야 뗄 수 없는 끈으로 묶여 있다는 그윽한 의미가 느껴집니다. 누군가 나에게 손으로 편지를 쓰면서 ‘당신이 평안해야 나도 평안합니다’라고 인사를 한다면, 그 마음이 더없는 따뜻함으로 전해질 것 같습니다.
남미 사람들은 누군가 내 집을 찾아오면 손님을 맞으며 이렇게 인사를 한다고 합니다. “미 까사 에스 뚜 까사.”(mi casa es tu casa) “내 집이 곧 당신의 집입니다.”라는 뜻인데, 발음 자체가 정겹게 여겨집니다. 조심스러운 마음이나 미안한 마음일랑 조금도 갖지 말고, 내 집처럼 편안하게 여기라는 세심한 마음이 물씬 전해집니다.
어쩌면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정말로 소중한 가치 중의 하나는 ‘환대’일지도 모릅니다. 어느새 우리의 삶을 규정하는 말은 외로움, 소원함, 소외, 사나움, 분노, 불신 등이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 시대의 특징을 ‘외로움’이라고 본 헨리 나우웬은 외로움의 뿌리는 아무런 조건 없이 보살피고 사랑해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그리고 우리가 이용되지 않고 연약한 모습을 드러낼 수 있는 곳이 아무 데도 없다는 막연한 생각 속에서 자란다고 했습니다. ‘잔인함의 반대는 그저 잔인한 관계에서 자유 하는 것이 아니라, 손대접이다.’라는 필립 할리의 말속에도, 우리 시대의 문제와 그 처방이 어디에 있는지를 돌아보게 합니다.
함께 살아가는 사람 사이가 거칠고 사나울수록 주먹을 쥐고 서로를 밀칠 것이 아니라, 두 팔을 벌려 서로를 끌어안을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