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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섭 시인님] 꿀벌 집단 실종사건

[이규섭 시인님] 꿀벌 집단 실종사건

by 이규섭 시인님 2022.04.08

꿀 농사는 몽골 유목민 생활을 닮았다. 강원도 철원에 사는 친척은 아카시아꽃이 피기 시작하면 남도 땅에 벌통을 옮겨 진을 친다. 대형 트럭에 벌통을 싣고 야간에 이동하여 밀원(蜜源) 현장에 내려놓는 일은 녹록지 않다. 몽골 유목민이 이동하기 쉬운 전통주택 게르를 이용하듯 며칠 머물 천막을 친다. 몽골의 초원은 국가 소유라 가축을 풀어 놓아도 되지만, 아카시아 나무가 많은 야산은 개인 소유지라 사전에 주인의 양해를 구해야 한다.
꿀벌들이 물어온 꿀을 거르고 정제하는 일도 여러 번 손이 간다. 비라도 내리면 초비상이다. 꿀 농사를 망치지 않을까 두려움이 봄밤의 습기처럼 스며든다. 다시 경북 북부지방에 머물다가 최전방 철원에 아카시아꽃이 피기 시작하는 5월 초순쯤 귀향한다. 그 무렵 해마다 믿고 사먹는 지인들에게 나눠 줄 아카시아 꿀을 가져오려고 들린다.
벌꿀 채취 현장에 가면 아카시아꽃향기에 취하고 부지런하게 꽃가루를 물어 나르는 벌들의 군무는 황홀하다. 아카시아꽃이 남쪽서부터 피기 시작하여 서서히 북상하던 개화기가 지구온난화로 전국 동시다발로 피기 시작하면서 이동 벌꿀 농사를 접고 비닐하우스 농사로 전업했다.
꿀 농사를 지어야 하는 계절인데 양봉 농가의 시름이 깊어졌다. 이른바 ‘꿀벌 집단 실종사건’ 때문이다. 농촌진흥청 등에 따르면 올해 전국 4173개 농가 39만 517개 벌통에서 꿀벌이 사라졌다. 벌통 한 개에 1만 5000∼2만 마리가 산다고 하니 70억 마리가 사라진 셈이다. 연 초 경남과 전남에서 꿀벌 실종사건이 드러났을 때만 해도 일부 지역인 줄 알았는데 강원과 제주 등 사실상 전국에서 꿀벌이 집단으로 사라진 것으로 나타났다.
꿀벌이 집단으로 사라진 이유는 뭘까? 농촌진흥청 민관합동 조사 등의 내용을 살펴보면 이상 기후를 가장 큰 원인으로 꼽는다. 지난해 장마와 가뭄, 저온현상이 이어져 꿀을 충분히 먹지 못해 꿀벌들의 면역력이 떨어졌다. 또한 이상 기온으로 꽃이 일찍 피면서 꿀벌들이 계절을 착각하여 벌통을 나갔다가 체력이 떨어져 돌아오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또한 응애(진드기)에 대한 방제가 제때 이루어지지 않았거나 과도한 농약 사용으로 꿀벌 발육에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도 나왔다. 영국 연구팀은 사이언스(Science) 저널에 기고한 글에서 ‘서식지 파편화와 살충제, 대기오염 기후변화’ 등을 원인으로 지적했다. 휴대전화 전자파도 꿀벌 개체 수 감소의 원인일 가능성이 있다는 스위스 꿀벌 전문가의 지적도 참고할만하다.
농작물의 3분의 1은 곤충이 꽃가루를 옮겨서 열매를 맺는데 그중 80%를 꿀벌이 담당한다. 과일과 채소 농가의 2차 피해를 염려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과일과 채소의 작황이 나빠지면 그 피해는 우리 모두가 고스란히 입게 된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의 “꿀벌이 없다면 세계 10대 농산물의 생산량이 현재의 29% 수준으로 줄어들 수 있다”는 경고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꿀벌이 멸종하면 인류도 4년 안에 사라진다”는 아인슈타인의 경고 또한 가볍게 넘길 일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