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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판권 교수님] 나무에게 꽃, 받침

[강판권 교수님] 나무에게 꽃, 받침

by 강판권 교수님 2022.04.11

전국의 꽃 소식은 코로나19로 지친 마음을 추스르기에 충분하다. 개화시기는 지역마다 다를 뿐만 아니라 같은 지역일지라도 식물의 몸 상태에 따라 다르다.
내가 사는 곳에는 현재 장미과의 갈잎큰키나무 왕벚나무의 꽃이 한창이지만, 집 근처 태암교 서쪽 끝자락 언덕에 살고 있는 왕벚나무는 주변의 왕벚나무보다 일주일 정도 먼저 꽃이 피었다. 식물은 각자 자신의 몸 상태에 따라 꽃을 피우기 때문에 절대 다른 존재와 비교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인간은 늘 식물의 개화 시기를 비교하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
꽃을 감상하는 방법 중 하나는 화서(花序), 즉 꽃차례 및 꽃받침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대부분의 나무는 봄에 꽃을 피운다. 그 이유는 사계절 때문이다. 식물이 꽃을 피우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후손을 남기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식물은 후손을 남기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벌과 나비 등 곤충이 활동하는 계절에 꽃을 피울 수밖에 없다. 식물은 효과적으로 암술의 꽃가루가 암술머리에 붙인 수분(受粉)을 위해 한꺼번에 꽃을 피우지 않고 순차적으로 꽃을 피운다.
이 같은 화서(花序)는 식물이 선택한 고도의 전략이다. 식물의 개화 기간은 ‘열흘 붉은 꽃 없다/花無十日紅’는 표현처럼 짧다. 그래서 꽃을 순차적으로 피우면 꽃가루받이의 매개체를 오랫동안 방문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러면 식물은 후손을 많이 남길 수 있다. 사람들도 식물의 이 같은 전략 덕분에 꽃을 오랫동안 감상할 수 있고, 열매도 많이 얻을 수 있다.
봄에 꽃을 피우는 나무 중에는 매실나무, 살구나무, 자두나무, 복사나무, 사과나무, 배나무, 왕벚나무 등 장미과가 많다. 장미과 나무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꽃잎이 다섯 장이라는 점이다. 사람들이 즐겨 찾는 매실나무와 왕벚나무 등 적지 않은 장미과 나무들의 또 다른 특징은 꽃받침도 다섯 장이라는 사실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장미과의 나무에 핀 꽃을 즐기면서도 꽃받침에 대해서는 거의 관심을 갖지 않는다. 심지어 꽃받침이 있다는 것조차 알지 못한다. 그러나 매실나무, 살구나무, 왕벚나무의 화려한 꽃은 꽃받침 덕분이다. 꽃받침은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지만 화려한 꽃의 숨은 공신이다. 다섯 장의 꽃잎마다 한 장씩 달려서 자신의 몫을 충실하게 담당하지 않는다면 꽃은 수정하지 못한 채 금세 사라질 것이다.
꽃받침은 꽃잎을 받쳐주는 역할에 그치지 않고 수정이 끝난 후 탄생하는 어린 열매를 보호하는 역할까지 담당한다. 그래서 꽃받침은 꽃잎이 떨어진 뒤에도 열매가 살아남을 때까지 떨어지지 않고 남아 있다. 만약 수정 후 꽃잎이 떨어지면서 꽃받침까지 동시에 떨어진다면 열매는 의지할 곳이 없다. 더욱이 어린 열매는 강렬한 태양빛을 받으면 화상을 입을 수도 있다. 나무에게 꽃의 받침은 후손을 남기기 위한 최후 수단이다.
그러나 인간은 꽃받침에 대해서는 정말 무관심하다. 인간이 나무가 선택한 최후 수단을 보지 않는다는 것은 원인과 결과 중 원인만 본다는 뜻이다. 삶은 과정이지 결과가 아니다.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과정에 충실해야 한다. 식물이 꽃을 피우는 과정과 이유를 알면 훨씬 아름다운 봄날을 즐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