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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 목사님] 방탄조끼 입고 씨 뿌리는 농부들

[한희철 목사님] 방탄조끼 입고 씨 뿌리는 농부들

by 한희철 목사님 2022.05.04

종이에 인쇄된 신문을 구독한 것이 언제였나 싶게 요즘은 뉴스를 다양한 매체를 통해서 접하게 됩니다. 그중 흔하게 접하게 되는 것이 인터넷 매체입니다. 바쁘게 지내는 터라 관심이 가는 제목이나 사진을 보고 내용을 확인하곤 합니다.
최근 숨이 턱 막히는 뉴스의 제목과 사진을 보게 되었습니다. 방탄조끼를 입고 씨앗을 뿌리는 농부들 이야기였는데, 막상 방탄헬멧과 방탄조끼를 입고 있는 농부들의 사진을 보자 제목만 읽고 긴가민가했던 감정이 대번 구체적으로 변했습니다.
러시아의 침공으로 전쟁을 치르고 있는 우크라이나 농부들 이야기였습니다. 평소 우크라이나에 대해 별 관심을 갖지 않아 전혀 알지 못한 일이었지만, 우크라이나는 세계적으로 중요한 식량생산국이었습니다. 국제곡물위원회의 자료에 따르면 우크라이나는 2020~2021년 곡물 4470만 톤을 수출한 세계 4위의 곡물 수출국이었습니다.
러시아와 함께 세계 밀 수출량의 1/3을 차지하고 있고, 옥수수, 보리, 해바라기 씨앗의 3대 수출국이기도 합니다. 전 세계 옥수수의 20%와 해바라기 기름의 80%가 우크라이나에서 나오고 있으니, 세계 식량의 상당량을 책임지고 있는 나라였습니다.
우크라이나 남동부에 자리 잡은 자포리자는 격전지인 돈바스와 200㎞ 떨어진 곳으로, 러시아군 공격으로 다연장로켓포탄이 수시로 떨어지고 있습니다. 세계 식량의 상당량을 책임지는 곡창지대가 생사를 알 수 없는 전쟁터로 변한 것입니다. 그런 위험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농부들은 봄을 맞아 씨앗 뿌리기를 멈추지 않고 있었던 것입니다.
언제 어떤 공격이 가해질지 모르는 위태하고 긴박한 상황 속에서도 농부들은 방탄조끼를 입고 방탄헬멧을 쓴 채로 트랙터로 밭을 갈고 씨앗을 심었습니다. 그러다가 포격이 시작되면 황급히 대피하는 일을 반복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목숨을 걸고 농사를 짓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우크라이나 농업부에 따르면 러시아의 침공으로 인해 올봄 작물 파종 면적은 예상 면적의 20%에 그치고 있습니다. 생산 부족이 자명한 상황, 전 세계의 곡물 가격도 요동을 치고 있습니다. 한 보도에 따르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전 세계의 밀 가격은 이전보다 최소 30%가량 상승을 했고, 유엔은 이번 전쟁으로 인해 전 세계 약 17억 명이 빈곤과 기아에 직면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방탄조끼를 입고 방탄헬멧을 쓴 채로 농사일을 하는 농부들의 모습에서는 비장함이 느껴집니다. 굶어죽는 한이 있어도 씨 곡식은 베고 죽는 농부를 떠올리게 합니다. 비록 농사를 지어 손해를 본다 해도 땅을 놀리는 것은 하늘에 죄를 짓는 일이라며 여전히 땅을 일구던 강원도 단강마을 주름투성이 농부들이 떠오릅니다.
전쟁은 어떤 이유로든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전쟁으로 인하여 굶주려 죽는 이가 단 한 명이라도 나온다면, 하늘이 결코 그 죄를 모른다 하지 않을 것입니다. 방탄조끼를 입고 씨앗을 뿌리는 이들을 부디 하늘이 지켜 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