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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들! 컴퓨터 꼭 배우세요!"

"어르신들! 컴퓨터 꼭 배우세요!"

by 안양교차로 강진우 기자 2014.06.02

'타닥. 타닥.' 석수1동 주민센터 2층
컴퓨터실에서 타자기 치는 소리가 흘러나온다. 컴퓨터 앞에 앉아 모니터를 바라보는 석수1동 주민들의 눈빛이 사뭇 진지하다. "다들 잘하셨어요. 이제 마우스를 한 번 써볼께요." 친절이 묻어나는 김영건(53) 강사의 목소리에 맞춰 '딸깍.
딸깍.' 경쾌한 마우스 소리가 컴퓨터실에 가득 울려 퍼진다. 자신의 지식으로 나눔을 실천하는 김 강사의 '행복한 컴퓨터 교실'이다.

▶'누구나 컴퓨터 사용하는 세상' 꿈꾸다
김영건 강사는 현재 석수1동 주민센터에서 주민들에게 컴퓨터를 가르치고 있다. 2003년부터 시작했은 벌써 11년째다. 그녀는 일주일에 세 번 주민들을 만난다. 월요일에는 9시 30분부터 12시 30분까지 엑셀과 파워포인트를 가르치고, 화요일과 목요일에는 10시 30분부터 오후 4시까지 컴퓨터 작동법과 설치법, 한글 프로그램, 프린터·인터넷·스마트촌 사용법, 클라우드 활용법 등 기초적인 컴퓨터 사용법을 전수한다. 현재 그녀의 커리큘럼에 따라 배우는 주민들이 4개 반, 80여 명에 이른다.
"이미 세상은 산업사회에서 정보화사회로 변모했어요. 정보가 곧 재화인 거죠. 이런 정보를 가장 빨리, 그리고 많이 얻을 수 있는 통로가 바로 컴퓨터예요. 21세기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컴퓨터를 사용할 줄 알아야 해요."
'누구나 컴퓨터를 사용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김 강사는 만안구 노인복지관으로 향한다. 사실 어르신들에게 컴퓨터를 가르치는 일은 일반인을 가르치는 것보다 훨씬 힘들다. 컴퓨터 자체를 한 번도 만져보지 못한 어르신드리 태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기꺼이 이 일을 자원해 일주일에 두 번, 50여 명의 어르신들을 만난다. 정보화사회의 음지에 서 있는 어르신들을 양지로 인도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핵가족이 보편화되면서 어르신들은 정보에서 소외되어왔어요. 안타까운 일이죠. 그래서 만나는 어르신들에게 항상 '컴퓨터 꼭 배우시라'고 말씀드려요."
컴퓨터 강의로 나눔을 실천하다
누구나 그렇듯 김 강사에게도 처음은 있었다. 디자인을 전공한 그녀는 우연히 한지 공예의 아름다움에 빠져들었다. 2년간 한지 공예 작가에게서 기술을 전수받으며 '한지 공예를 널리 알리고 싶다'고 생각했다. 홍보 방법을 찾던 중 인터넷을 발견했다. 곧바로 만안구 여성회관의 컴퓨터 교실을 수강했다. 1995년의 일이었다.
"컴퓨터를 배우면서 홈페이지도 만들고 하다 보니 이 일이 굉장히 재미있더라구요. 그래서 아예 직업훈련학교에 들어가서 전자상거래에 대해 배우기 시작했어요. 전자상거래를 하려면 데이터베이스 활용·넷망 형성·문서 작성법 등 컴퓨터 전반에 대한 지식과 기술이 필요 했어요. 덕분에 이 수업을 들으며 컴퓨터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지식을 쌓을 수 있었죠. 힘들었지만 참 보람 있었어요. 이때 한가지 깨달은 게 있어요. 언젠가는 자그마한 모니터 화면 안에 우리가 사는 세상이 모두 들어갈 거라는 걸 직감한 거죠."

직감은 현실이 됐고, 김 강사는 컴퓨터를 가르치기로 결심했다. 1997년 범계초등학교와 귀인중학교에서의 로봇제작수업을 시작으로 1999년 연현초등학교에서의 어머니교실 컴퓨터 강의, 2000년 석수2동 주민센터와 안양시 평생교육원에서의 컴퓨터 강의가 이어졌다. 특히 석수2동 주민센터에서는 작년까지 무려 13년 동안 분필을 잡았다.
김 강사의 커리큘럼은 끊임없이 변한다. 새로운 기술과 지식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상황에서 고정된 프로그램으로 교육할 수는 없었다. 요즘은 스마트폰과 연계하여 컴퓨터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보통 스마트폰 교육은 컴퓨터 교육과 따로 분리하여 가르치기 마련. 하지만 그녀의 생각은 다르다. 두 기기의 연계성이 강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굳이 따로 가르칠 필요가 있는냐는 것이다.
"저 또한 새로운 프로그램과 기기, 기술을 계속 공부하면서 주민들에게 가르치고 있어요. 어떤 분들은 '뭘 그렇게까지 가르치느냐'고 말씀하시기도 해요. 그런데 그게 아니에요. 새로운 흐름을 따라가지 않으면 의미기 없어요. 그래서 요즘에는 스마트폰도 함께 교육하고 있는 거죠."

김 강사의 강의에는 두 가지 특징이 더 있다. 배움이 단발성으로 끝나지 않도록 각 반을 연계한 학습 체계가 첫 번째다. 각 3개월 과정인 기초반, 정보활용반, PC관리반을 거치며 총 9개월 동안 컴퓨터 강의를 듣도록 했고, 엑셀·파워포인트를 심화 과정으로 배울 수 있도록 커리큘럼을 짜놓은 것이다. 덕분에 주민들은 몸에 익을 때까지 컴퓨터를 배울 수 있다. 또 하나의 특징은 상용화된 프로그램을 가르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그녀 특유의 '나눔 정신'에서 발현된 것이다.
"주민센터에서 다 가르치면 동네 컴퓨터 학원은 뭘 가르치죠? 남녀노소 구분 없이 상생하려고 컴퓨터를 가르치는데 그럴 순 없죠. 그래서 주민센터에서는 기본적인 것을 가르치고, 자격증을 따거나 전문적인 지식을 배우려면 그분들에게 가서 배우도록 유도하고 있어요."
"컴퓨터 강의는 나의 지식을 나누는 행위" 라고 말하는 김 강사. 그녀의 나눔 정신은 현재 어르신들에게로 향해 있다. 어르신들을 위한 컴퓨터 강의를 확대할 예정이고, 나중에 귀향을 하게 되면 시골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컴퓨터를 가르칠 생각이다.
"우리 사회의 관심을 보육 복지에 쏠려있어요. 상대적으로 노인 복지는 관심을 덜 받죠. 지금의 우리나라를 위해
피땀 흘리신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어요. 이게 제 소명이고, 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라고 믿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