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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 장수사진 두번째 촬영 내덕2동사무소

어르신 장수사진 두번째 촬영 내덕2동사무소

by 청주교차로 이승민 2014.07.23

‘하루는 길고, 일 년은 짧다’
햇살아래 고요히 흐르는 물처럼 천천히 온다. 가만히 귀 기울여 보면 자분자분 낮은 소리가 온다. 무게가 느껴지지 않을 만큼, 아주 조용히 온다. 온다는 것은 누군가를 만나러 오는 것이다.
‘장수사진’이라는 미명을 달았지만, 사실 ‘영정사진’이다. 영정사진은 자신을 위한 사진이 아니다. 훗날 후손들이 만날 자신의 사진이다. 세상을 떠나고 난 뒤, 장례식장의 영정에서 그리고 거실의 벽이나 제사상에 오를 자신의 모습인 것이다. 세상에 남겨진 자신의 마지막 흔적이 바로 ‘장수사진’이다.
“할머니, 장수사진은 한 번 찍을 때마다 수명이 3년 연장되신대요.”
“아휴, 그런 것이 어디 있어. 늙으면 죽어야지 무슨…….”
하지만 혀를 차면서도 기분은 나쁘지 않은 듯 슬쩍 퍼져 나오는 미소를 거둘 수 없다. 올해 두 번째 교차로에서 열고 있는 내덕2동 ‘장수사진’ 행사 풍경이다.

삶을 그리다
아침부터 열기가 후끈 달아오르는 한여름이지만, 행사가 열리는 내덕동사무소 2층 강당은 에어컨 덕분에 더없이 쾌적하다. 교차로 문화사업본부 직원들이 친절한 미소로 맞이하면, 오시는 노인들도 반갑게 미소로 화답한다. 미소의 꽃이 만발한 아침이다.
내덕2동 윤기학(53)동장은 “청주교차로에서 펼치는 장수사진 행사는 아름다운 나눔의 모습이다. 장수사진은 어려운 어르신에게는 고마운 선물이다. 후손들에게 번듯한 영정사진을 남겨 놓는 것도 한시름 더는 일이기 때문이다. 사진을 찍고 돌아가시는 어르신들이 무척 고마워하신다.”라고 말한다.
오늘 어르신 장수사진 행사에 참석한 이들은 모두 28명이다. 원래 34명이 오기로 했지만, 사정상 6명이 오지 못했다. 가지런히 앉아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모습이 어쩐지 애잔하기도 했다.
푸른 젊음은 어느덧 바람처럼 지나가 버리고 은발의 형상을 한 노인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얼굴의 주름을 펴주고, 검버섯은 지워주는 예쁜 손길도 있다. 바로 얼굴화장을 담당하고 있는 김수민(24)씨다. “중학교 때부터 어머니를 통해 메이크업을 배웠어요. 어르신들의 얼굴에 화장을 하다보면 쓸쓸한 생각도 들죠. 하지만 조금이라도 그 분들의 삶을 행복하게 꾸며드리고 싶어요.”라고 말한다. 김수민 메이크업 아티스트는 충북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했다. 현재 뉴욕에서 작품전을 열고 있는 재원이다. 그녀는 단순하게 화장을 하기보다는 어르신들의 삶을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이때 무언가를 끊임없이 말하는 것 같은 할머니 한 분이 며느리의 부축을 받으며 무대에 오른다. 오늘 참석한 노인들 중 최고령인 안기복(95)할머니다. 며느리 이명순(61)씨는 “건강하십니다. 어머님이 장수사진이라고 하시니 좋아하시네요.”라고 말한다. 한복으로 갈아입은 할머니의 모습이 천진한 아이 같다. 무엇이 좋으신지, 촬영기사가 시키는 그대로 모델처럼 해맑게 웃는다.

75살이 커트라인
“노인정에는 75살이 커트라인이야. 내가 처음 노인정에 갔을 때, 친구가 회장이었어. 그런데 사람들은 나보다 두 살이 많은 줄 알지 뭐야. 덕분에 내가 대우 좀 받았지. 75살 아래는 애 취급받아. 적어도 75세는 넘어야 되지.”
노인정 이야기를 구수하게 풀어내는 전형태(77)할아버지다. 옆에서 다소곳하게 있던 최옥임(72)할머니는 남편의 말에 빙그레 웃는다. 장수사진을 찍으러 온 부부는 모두 네 쌍이다. 부부끼리 다정하게 앉아 장수사진을 찍는 것도 행복이다. 적어도 50년 가까이 해로(偕老)한 삶이 아니던가.
“70살 정도에 한번 영정사진을 찍었는데, 너무 젊어 보여 못쓰겠더라고. 영정사진은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야 어울려. 그래서 다시 찍으려고 나왔지.”
서동서(82)할아버지의 말이다. 옆에 함께 앉아 있는 아내 이분임(78)할머니도 고개를 끄떡이며 응원한다. 교차로에서 나눠준 음료수를 한 모금 마시던 한 할머니는 “아휴, 고맙지 뭐. 이렇게 사진도 찍어주고 먹을 것도 주고……. 사진틀도 만들어준다며?”라며 겸연쩍은 미소를 짓는다.
청주교차로 문화사업본부 황익주 본부장은 “청주시민들에게 사랑을 듬뿍 받은 청주교차로신문은 이제 다시 여러 분야로 환원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나눔은 기업이 앞장 서야한다. 어르신들의 장수사진은 몇 년 전에 추진했던 사업이다. 다시 좋은 사업을 이어가 보람을 느낀다.”라고 말한다.
“늙은이들에게 하루는 너무 길어. 두 늙은이가 아침에 눈을 뜨면 아침 먹고 다시 점심 그리고 저녁을 먹고 나면 밤인데……참 길어. 그런데 한 달, 일 년은 금방 가. 내 삶도 금방 가버렸어. 눈 깜짝 할 사이에.”
삶이란 그런 것인가 보다. 최근순 할머니(72)가 노래하듯 나지막이 읊조린다.
‘하루는 길고, 삶은 짧다.’
한 줄의 시어였다. 오랜 삶을 통해 내뱉은 통찰의 언어였다. 그 소리를 듣던 최옥임(72)할머니도 말한다.
“서글프지 인생이란. 다 살았다 싶기도 해. 이렇게 나도 영정사진을 찍을 때가 되었구나 싶어. 하지만 고맙지. 잘 죽는 것도, 잘 살아온 삶에 대한 예의지.”
장수사진을 찍는 풍경은 슬픈, 그러면서도 감사의 마음이 함께 공존하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