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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윤 기자의 반가운 기별] 계란유골

[윤기윤 기자의 반가운 기별] 계란유골

by 청주교차로 윤기윤 기자 2014.06.10

▲ 청주교차로 윤기윤 기자

비가 내린다. 오락가락 궂은 날씨만큼이나 착잡한 심정으로 청문회를 지켜보고 있자니, 비도 오는 터에 마침 '계란유골(鷄卵有骨)'이 절로 떠오른다.
조선시대 청렴한 재상으로 이름 높았던 황희 정승에서 유래된 이 '계란유골'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은 별반 없을 것이다. 세종대왕은 평소 단벌 관복에 비새는 집에 거하는 황희 정승을 안쓰럽게 여겼다. 궁리 끝에 "내일 아침 남대문으로 들어오는 물건을 다 사서 황희 정승에게 주겠노라"하였다. 그러나 그날 뜻밖에 비바람이 심하여 종일토록 들어오는 물건이 없었다.
그러다 다 어두워진 저녁에 어느 시골 영감이 계란 한 꾸러미를 들고 들어왔다. 왕의 약속대로 이 계란은 즉시 황희 정승에게 전해졌다. 하지만 계란이 다 곯아서 먹을수가 없었다. 이에 '곯다'의 음을 빌려와 '골(骨)'이 쓰여 졌고, 계라에도 뼈가 있다'는 직역으로 풀이하기도 한다. 그러나 널리 쓰이는 의미는 '운이 나쁜 사람은 모처럼 기회가 와도 되는 일이 없음'을 나타낸다. 조선후기 학자 조재삼의 <송남잡지(宋南雜誌)>에 실려있는 이야기다.
학창시절 한문 시간에 이 '계란유골'이란 고사 성어를 배우면서 '운 없는 사람'으로서의 의미보다는 '황희 정승의 청령함'을 간직한 뜻으로 가슴에 인상 깊에 새겨졌다. 성군에 명재상이라. 그 시절 조선의 백성들은 복 많았던 이들이었다. 그 때의 영의정 황희 정승의 위치가 지금의 총리 자리다. 청문회 내용을 보나 나라의 지도자급 정치인사들에게 특별한 도덕성이나 청렴함을 바란다는 것이 매우 과분한일이라는, 서글픈 현실을 깨닫게 되었다. 황희 정승 정도의 청렴결백은 감히 바라지도 않거니와 거짓과 법률 위반만 없어도 다행일 지경인 것이다.
총리 후보자가 6일만에 사퇴 했다. 이유가 "국민총리를 하게되면 현 정부에 부담을 준다"고 말했다. 이어 "이젠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가려 한다"면서 앞서 지난 1년간 변호사로 활동하며 늘어난 재산 11억원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약속에 대해서는 "국민 여러분께 약속한 기부는 성실히 이행하겠다"고 발혔다.
과연 그 말에 책임을 지고 약속이 지켜질지는 두고 볼 일이다.
총리 후보자는 대법관 퇴임 후 지난해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한 뒤 5개월간 16억원의 수입을 올린 것으로 드러나자 '전관예우' 논란에 휩싸였으며 야당의 사퇴 공세에 직면했었다.
흔히 하는 말로 영의정 자리 지금의 총리를 일인지하(一人之下) 만인지상(萬人之上)의 자리라고 했다. 그렇다면 만인이 우러러 보아야 할 도덕적 엄정함과 수범적 생활 태도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나저나 곯은 계란을 두고 황희 정승은 뭐라 하였을까. "어찌 영의정에게 이런 계란을..."라고 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또한 영의정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비새는 집에 거하였으니, 공무로 먼 길 떠나서도 진자리 마른자리 가리지 않았을 것이다. 영의정으로서 국민의 혈세로 호화객사에 들어야 체면이 선다고는 더구나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시대에도 '계란유골'과 같은 고사 성어를 만들어낼 인물은 정녕 없는 것인가. 아직 찾지 못했음인지, 정말 없는 것이지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