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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판권 교수님] 명전차와 우전차

[강판권 교수님] 명전차와 우전차

by 강판권 교수님 2022.04.25

기후(氣候)는 생명체 삶의 나침반이다. 왜냐하면 생명체는 기후의 변화에 따라 적응하면서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차 중에서 가장 먼저 만든 것은 명전차(明前茶)이다. 명전차는 청명 전에 찻잎으로 만든 것이다. 청명은 24절기 중 4월에 맞는 첫 절기이다. 절기는 기후의 ‘기’이며, 한 달에 두 번의 절기가 있다. ‘후’는 한 절기를 5일 간격으로 관찰한 것을 의미하며, 24절기에 3을 곱하면 72후이다.
청명은 양력으로 4월 5일경에 해당한다. 명천차는 최근에 생긴 차의 이름이다. 그래서 전통시대의 자료에는 명전차가 등장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청명 전에 찻잎을 딸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기후 변화로 청명 전에도 찻잎을 딸 수 있기 때문에 명전차가 등장했다.
우전차(雨前茶)는 곡우 전에 찻잎으로 만든 것이다. 곡우는 청명 다음의 4월 절기이다. 청명의 보름 뒤이니 4월 20일경이다. 우전차는 명전차가 등장하기 전까지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만날 수 있는 차이고, 차 중에서 가장 귀했다. 왜냐하면 곡우 전에 찻잎을 딸 수 있는 양이 아주 적기 때문이다. 우전차는 우리나라 전통시대에도 마셨던 차이다. 열수(洌水) 정약용(丁若鏞)은 우전차를 사랑한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다산시문집』 「신차(新茶)」에서 확인할 수 있다.

소금장 밖에 높다란 깃대를 세우고서 / 銷金帳外建高牙
게의 눈과 고기비늘 안화가 가득해라 / 蟹眼魚鱗滿眼花
가난한 선비는 점심 끼니도 채우기 어려워 / 貧士難充日中飯
새 샘물 떠다 부질없이 우전차를 다리도다 / 新泉謾煮雨前芽

우전차는 이유원(李裕元, 1814-1888)의『임하필기(林下筆記)』 「순일편(旬一編)」에서도 ‘호남의 네 가지 물품’을 소개하면서 우전차를 언급하고 있다. 이유원이 언급한 호남의 네 가지 물품 중 우전차 외의 것은 녹나뭇과 늘푸른큰키나무 생달나무의 열매 기름, 추사 김정희가 제주도에서 처음 발견한 수선화, 황차 등이다. 그런데 이유원은 우전차를 정약용이 만든 것으로 소개했다. 정약용은 조선 후기 최고의 차 전문가였다.
이유원은 같은 작품에서 북경에서도 우전차를 귀하게 여긴다고 소개했다. 『임하필기』에 따르면, 당시 중국에서 가장 큰 시장은 심양(瀋陽) 이었다. 심양은 북쪽 변방의 부락(部落)에 가까워서 명나라 말기에 치시(茶市)를 독점하여 군수(軍需)에 보탰다. 그때 유목민이 강성하여 차 소비가 매우 많았다. 당시 이곳에는 길거리나 깊은 계곡에도 찻집이 있었다. 유목민이 차를 즐긴 이유는 차가 마유에 섞어 먹을 수 있는 최고의 영양식이었기 때문이다.
명전차와 우전차는 우리나라 최고의 차이지만, 생산량이 아주 적어서 맛을 볼 수 있는 사람이 극소수이다. 특히 명전차와 우전차는 1년 동안 아주 짧은 기간에만 맛볼 수 있다. 그래서 오랫동안 기다려야 한다. 명전차와 우전차처럼 귀한 존재는 그리운 마음으로 기다려야만 그 가치를 맛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