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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판권 교수님] 여름의 언어

[강판권 교수님] 여름의 언어

by 강판권 교수님 2018.06.18

자연생태는 생명체의 정체성을 결정한다. 그래서 한반도의 자연생태는 한국인의 정체성을 이해하는데 아주 중요하다. 한민족(韓民族)은 한반도의 토양과 기후, 식물과 동물에 기대면서 살아왔기 때문이다. 한민족의 모습은 곧 한반도의 자연생태를 닮았다. 우리말 한글도 한반도의 자연생태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한반도의 기후는 사계절이라는 단어를 낳았고, 여름도 한반도의 기후 덕분에 생긴 단어다. 만약 한반도의 기후에 여름이 없다면 여름이라는 단어도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한글이 세계에서 아주 우수한 언어로 평가받고 있는 것도 한반도의 자연생태 덕분이다. 한글이 다양한 어휘를 사용하는 것도 사계절의 자연생태 덕분이다. 사계절은 계절마다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계절의 다양한 모습은 다양한 언어를 탄생시킨다.
사계절을 의미하는 한자는 춘하추동(春夏秋冬)이다. 춘하추동의 공통점은 한 글자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한글은 춘·하·추·동을 봄·여름·가을·겨울이라 부른다. 봄을 제외하면 나머지 계절은 두 글자다. 사람들이 여름 하면 떠올리는 ‘덥다’는 단어는 한반도의 기후가 덥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그러나 여름이라고 해서 지구 전체가 반드시 덥지는 않다. 남극의 여름은 영하권이다. 그래서 남극에서는 덥다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더위를 식히는 부채도 여름의 언어다. 물푸레나뭇과의 갈잎떨기나무 미선(美扇)나무는 열매가 아름다운 부채를 닮아서 생긴 이름이다. 특히 미선나무는 충청북도 괴산, 진천, 영동 등 우리나라에서만 자생하는 나무다. 미선나무는 여름에 꽃이 핀다.
여름과 관련한 속담은 여름 언어를 고스란히 품고 있다. 예컨대 “가뭄 끝은 있어도 장마 끝은 없다”는 속담은 장마가 여름을 상징하는 단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장마는 한반도의 기후 상태를 가장 잘 보여준다. 우리나라는 1년 중 여름에 강수량이 가장 많다. 그래서 생긴 언어가 ‘장마’다. 중국의 경우 매실이 익어갈 때 장마가 시작된다. 그래서 장마를 ‘매우(梅雨)’라 부른다. 우리나라도 중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매실이 익어갈 즈음 장마가 시작된다. 그러나 이제 기후온난화로 예전에 비해 장마철도 일정하지 않다. “유월 보름날은 고양이 코도 따스하다”는 속담은 고양이도 코를 사타구니에 묻지 않아도 될 만큼 덥다는 뜻이다. “고양이도 유월 초하루가 있다”는 속담도 더위를 나타낸다. 이는 추위를 싫어하는 고양이의 생태를 통해 여름의 더위를 드러낸 것이다. “처서가 지나면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는 속담은 더위가 끝나는 즈음의 상황을 잘 보여준다. 이 속담은 여름에 기승을 부리는 모기도 더위가 끝나는 처서에는 삶을 마감한다는 뜻이다.
이처럼 우리나라에는 여름 속담이 적지 않다. 여름 속담은 여름이 존재하는 곳에서만 탄생할 수 있는 언어다. 여름에 맞춰서 꽃을 피우는 나무도 여름의 언어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생명체다. 여름에 꽃을 피우는 나무 중에는 무환자나뭇과의 모감주나무, 부처꽃과의 배롱나무, 부용과의 무궁화, 소태나뭇과의 가죽나무를 들 수 있다. 이 같은 나무들은 모두 갈잎나무다. 여름은 이들 나무들을 존재케 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