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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섭 시인님] 술탄의 영욕 깃든 톱카프 궁전

[이규섭 시인님] 술탄의 영욕 깃든 톱카프 궁전

by 이규섭 시인님 2018.07.06

‘21세기 술탄의 탄생’-.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최근 치러진 대선에서 승리가 확정된 뒤 서방 언론의 반응이다. 여권 연합이 총선에서도 과반을 넘겨 입법, 행정, 사법권 모두를 장악하여 종신 집권의 길이 열려 권력의 집중화를 빗댄 표현이다. 술탄(Sultan)은 아랍어로 힘 또는 권위를 뜻한다. ‘중세 이슬람 제국의 황제’로 의미가 굳어지면서 막강한 권력의 상징이 됐다.
술탄이 무한 권력을 휘두르며 대제국을 다스렸던 곳이 터키 오스만제국 시절의 ‘톱카프 궁전’이다. 1453년 오스만제국의 메흐메드가 건설을 시작해 1467년 메흐메드 2세 때 완공됐다. 3개의 정문과 4개의 정원으로 꾸며진 구중궁궐로 약 400년 동안 25명의 술탄이 거쳐 갔다. 터키어로 톱(Top)은 ‘포’, 카프(Kapi)는 ‘문’으로 ‘대포의 문’이라는 뜻이다. 궁전 입구 양쪽에 대포를 배치해 놓았다.
첫 번째 정문인 ‘제국의 문’을 들어서면 숲과 잔디가 조화를 이룬 제1정원이 눈길을 시원하게 한다. 술탄과 궁전을 수비하는 ‘예니체리’ 근위대가 주둔하여 ‘예니체리 마당’이라고도 불린다. 기독교 집안의 건장하고 잘 생긴 소년들을 모아 최고의 대우와 강한 훈련, 술탄에 대한 충성교육을 시켰다. 14~15세기 유럽 군대들은 ‘예니체리’이름만 들어도 벌벌 떨었던 정예부대다. 권력이 비대해지자 술탄을 배신하고 살해하는 등 전횡을 휘둘러 1826년 무라드 4세가 ‘예니체리’ 부대에 포탄 세례를 퍼부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경의의 문’이라 불리는 제2정문은 문 양쪽의 방추형 석탑이 인상적인 중문이다. 이곳부터 백성들의 출입이 통제되고 술탄 이외에는 말에서 내려 들어갔다. 관광객들은 공항과 비슷한 보안검색대를 통과하여 들어간다. 제2정원 왼쪽에 대신들이 국사를 논의하던 건물이 있어 ‘디완의 정원’으로 불린다. 오른쪽 여러 개의 커다란 굴뚝이 솟은 주방건물은 도자기 전시실로 활용한다.
‘지복의 문으로’ 불리는 세 번째 문은 황제와 황제의 측근만이 통과할 수 있는 문이다. 제3정원은 황제의 즉위식이 열리던 공간이다. 보물관엔 세계 최대의 에메랄드 86캐럿 다이아몬드가 광채를 뿜는다. 금화 8만 개를 녹여 만들어 대관식 때 사용한 ‘황금의 옥좌’는 화려하다. 18세기 터키 보석 세공기술의 걸 작품이라는 ‘톱카프 단검’은 세 개의 커다란 에메랄드로 장식된 손잡이와 칼집에 박혀 있는 다이아몬드가 찬란하다. 술탄의 권위를 상징하는 장식물과 보물들이다.
권력의 잔혹사를 엿 볼 수 있는 공간은 궁중 여인들의 은밀한 처소 ‘하렘’이다. 오로지 술탄 한 사람의 총애에 인생을 걸었던 여인들의 정한이 서린 곳이다. 술탄은 즉위하면 권력의 안정을 위해 동생들을 처형했다. 자리다툼에서 밀려난 왕자들을 유배시키거나 ‘하렘의 새장’이라 불리는 방에 유폐시켰다니 권력의 속성이 섬뜩하다. 하렘의 일부만 전시품과 함께 공개한다. 제4정원은 출입통제 구역이다.
술탄 압뒬메지트 1세는 톱카프 궁전보다 화려한 돌마바흐체 궁전을 보스포루스 해협에 지어 옮겨 갔다. 1922년 술탄제가 폐기되자 오스만제국의 마지막 술탄 메흐메트 6세가 망명길에 오르며 절대 권력은 종말을 고한다. 무소불위 권력의 끝은 무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