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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 목사님] 마지막 선택은 얼싸안기

[한희철 목사님] 마지막 선택은 얼싸안기

by 한희철 목사님 2018.08.22

멀리서 들려오는 소식이지만 마음을 아프게 하는 소식을 접할 때가 있습니다. 그리스에서 일어난 산불 소식도 그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리스에서 초유의 산불이 발생해 아테네 인근 휴양도시인 마티가 잿더미로 변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집 수백 채와 차량 수백 대가 전소했고, 희생을 당한 사람들의 숫자도 100여 명에 이른다니, 피해의 규모가 쉬 짐작이 되지 않을 정도입니다.
사실 산불로 인한 피해는 그리스뿐만이 아닙니다. 지구촌 곳곳이 산불로 인해 극심한 피해를 당하고 있습니다. 스웨덴에서는 44곳에서 화재가 발생해 국제사회에 지원을 요청하기도 했고, 비상사태가 선포되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의 대형 산불은 해마다 반복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입니다.
전문가들은 산불의 원인을 기후변화에 따른 폭염의 결과라고 말합니다. 산불 발생에는 30도 이상의 기온과 30% 이하의 습도, 시속 30㎞ 이상의 풍속이라는 ‘30-30-30 법칙’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의 유럽과 북미가 기후변화로 인해 혹서와 가뭄과 바람 등이 모여 불이 일어날 만한 ‘불의 기후’가 됐다는 것입니다.
그리스의 산불 소식을 접하며 마음이 아팠던 것은 희생자들에 대한 소식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절벽 근처에 있는 한 건물에서는 26명이 한꺼번에 숨진 상태로 발견이 됐다고 합니다. 앞에서는 맹렬한 기세로 불길이 달려오는데 뒤로는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있어 탈출할 곳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어렵게 시간을 내어 휴양지를 찾아와 가족들과 함께 멋진 휴가를 즐기고 있던 이들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재앙이 한 순간에 닥쳐온 것이지요.
화마가 지나간 뒤에 발견된 희생자들의 모습이 또 한 번 그리스인을 울렸다고 합니다. 유전자를 감식한 결과 아홉 살 난 쌍둥이 자매가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발견이 되었는데, 그들 네 사람은 서로를 떼어낼 수가 없을 정도로 서로를 꼭 끌어안고 있었다고 합니다.
26명의 희생자들 대부분이 비슷한 모습으로 발견이 되었다고 하는데, 특히나 엄마들은 자신들을 향해 돌진하는 불길 앞에서 마지막 몸부림으로 자녀들을 끌어안은 채 희생을 당했다고 합니다. 피할 길이 없는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서 마지막 순간 그 어떤 것도 자신들을 보호해 줄 것이 보이지 않았을 때 그들이 마지막으로 택한 것은 서로를 끌어안는 일이었던 것이었습니다.
우리말에 ‘얼싸안기’라는 말이 있습니다. 얼싸안기라는 말은 단지 몸을 세게 끌어안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얼싸안기란 말 그대로 ‘얼’을 ‘감싸 안는 것’입니다. ‘얼’을 사전에서는 ‘정신에서 중심이 되는 부분’이라 설명하며, 영어로는 spirit(정신), mind(마음), soul(영혼)이라 풀고 있습니다. 한 인간 존재의 가장 깊은 부분을 말하는 것이겠지요.
다른 어떤 선택도 불가능했을 때 서로를 얼싸안았던 희생자들, 어쩌면 그들이 우리에게 일러주는 것은 그런 얼싸안기를 미루지 말라는 것 아닐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