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은 대표님] 누군가를 품어 안는다는 것
[김재은 대표님] 누군가를 품어 안는다는 것
by 김재은 대표님 2018.08.23
주말에 지리산에 다녀왔다. 벌써 6년째 매년 8월이 되면 지리산 천왕봉에 가곤 한다.
산에 다닌 지는 꽤 오래이지만 지리산은 큰 산이라 엄두를 내지 못하다가 용기를 냈었다.
언제부터 꾸준함의 내공이 생겼는지 알 수 없지만 무엇을 시작하면 여간해서 멈추지 않는 그 끈기를 가진 나 자신이 참 좋다.
백무동에서 장터목을 거쳐 바로 천왕봉에 오르거나 대원사, 치밭목, 중봉 코스, 청학동이나 거림, 한신계곡을 통해 오르기도 했다. 이제 지리산 천왕봉에 오르는 것이 연례행사처럼 친숙한 일로 느껴지니 이 또한 삶의 즐거움이 아닐 수 없다.
지리산에 오를 때마다 웅장한 산세에 입이 벌어지기도 하고 인생길마냥 산행길도 저마다의 많은 길이 있다는 것이 신기롭게 느껴진다. 그런데 지금도 아직 그 비밀이 온전하게 풀리지 않은 것이 있다. 바로 계곡을 따라 쉼 없이 흘러내리는 물줄기이다.
아주 드물게 계곡이 말라버리기도 하지만 여간해서는 마르지 않는 그 물의 정체가 궁금하다.
백무동에서 한신계곡을 따라 세석평전으로 오르는 이번 지리산 산행에서도 1,000미터가 훨씬 높은 곳인데도 물은 흘러내렸다. 산신령이 일부러 물을 흘러 내려보내기라도 하는 것처럼.
곰곰이 생각해본다.
그것은 나무와 풀, 그리고 수많은 것들이 뿌리내려 살아 숨 쉬는 산의 큰 품 때문이 아닐까.
하늘이 선물한 빗방울 한 방울도 허투루 하지 않고 큰 품에 모으고 모았다가 내려보낸다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숙연해졌다. 즉각적인 반응에 익숙하고 내 눈에 보이는 것은 다 내 것인 양 마구 쓰고 살아가는 우리네 삶이 그대로 오버랩되었기 때문이다.
아, 그랬구나. 우리가 품을 잃고 살아가고 있구나. 품어 안고 산다는 것을 놓치고 있구나.
그러고 보니 진정으로 누군가를 품어 안은 적이 언제였는지 아득하다.
지리산은 긴 세월 속에서 풀과 나무를 품고 벌레와 곤충, 새와 짐승들을 품어 온 것이었다.
가슴을 활짝 열고 그 무엇도 다 품어 안으려 했기에 품은 커졌고, 인간의 좁은 생각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큰 힘을 가지게 되었으리라. 무엇 하나 바라지 않으며 생명을 품어 안아 살리는 생명의 공간이 된 것이다.
이렇게 새롭게 다가오자 지리산은 이제 ‘또 하나의 산’이 아니었다. 이 땅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어머니였다. 누군가는 산이 거기에 있기에 산에 간다고 했지만 산에 가는 것은 어머니 품 안으로 들어가는 아이가 되는 것, 바로 그것이었다.
크고 작은 산을 가릴 것 없이 지금까지 무심코 오르락내리락 했던 산들이 무수한 어머니들이 되어 내 곁으로 다가왔다.
누군가는 이 더위에 무슨 등산 타령이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산에 오르는 것은 생명을 잉태하고 생명을 키우는 ‘생명의 젖줄’과의 인연임을 확인하니 즐거운 전율이 느껴진다.
옹졸한 내 품을 크게 키우고 좋은 것들은 물론 미움이나 원망, 분노까지도 다 담아내는 품을 가지고 싶다.
지금은 지리산을 다녀온 작은 후유증에 불편하지만 큰 지혜를 얻은 산행길이었으니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벌써부터 내년 지리산이 그리워진다.
산에 다닌 지는 꽤 오래이지만 지리산은 큰 산이라 엄두를 내지 못하다가 용기를 냈었다.
언제부터 꾸준함의 내공이 생겼는지 알 수 없지만 무엇을 시작하면 여간해서 멈추지 않는 그 끈기를 가진 나 자신이 참 좋다.
백무동에서 장터목을 거쳐 바로 천왕봉에 오르거나 대원사, 치밭목, 중봉 코스, 청학동이나 거림, 한신계곡을 통해 오르기도 했다. 이제 지리산 천왕봉에 오르는 것이 연례행사처럼 친숙한 일로 느껴지니 이 또한 삶의 즐거움이 아닐 수 없다.
지리산에 오를 때마다 웅장한 산세에 입이 벌어지기도 하고 인생길마냥 산행길도 저마다의 많은 길이 있다는 것이 신기롭게 느껴진다. 그런데 지금도 아직 그 비밀이 온전하게 풀리지 않은 것이 있다. 바로 계곡을 따라 쉼 없이 흘러내리는 물줄기이다.
아주 드물게 계곡이 말라버리기도 하지만 여간해서는 마르지 않는 그 물의 정체가 궁금하다.
백무동에서 한신계곡을 따라 세석평전으로 오르는 이번 지리산 산행에서도 1,000미터가 훨씬 높은 곳인데도 물은 흘러내렸다. 산신령이 일부러 물을 흘러 내려보내기라도 하는 것처럼.
곰곰이 생각해본다.
그것은 나무와 풀, 그리고 수많은 것들이 뿌리내려 살아 숨 쉬는 산의 큰 품 때문이 아닐까.
하늘이 선물한 빗방울 한 방울도 허투루 하지 않고 큰 품에 모으고 모았다가 내려보낸다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숙연해졌다. 즉각적인 반응에 익숙하고 내 눈에 보이는 것은 다 내 것인 양 마구 쓰고 살아가는 우리네 삶이 그대로 오버랩되었기 때문이다.
아, 그랬구나. 우리가 품을 잃고 살아가고 있구나. 품어 안고 산다는 것을 놓치고 있구나.
그러고 보니 진정으로 누군가를 품어 안은 적이 언제였는지 아득하다.
지리산은 긴 세월 속에서 풀과 나무를 품고 벌레와 곤충, 새와 짐승들을 품어 온 것이었다.
가슴을 활짝 열고 그 무엇도 다 품어 안으려 했기에 품은 커졌고, 인간의 좁은 생각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큰 힘을 가지게 되었으리라. 무엇 하나 바라지 않으며 생명을 품어 안아 살리는 생명의 공간이 된 것이다.
이렇게 새롭게 다가오자 지리산은 이제 ‘또 하나의 산’이 아니었다. 이 땅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어머니였다. 누군가는 산이 거기에 있기에 산에 간다고 했지만 산에 가는 것은 어머니 품 안으로 들어가는 아이가 되는 것, 바로 그것이었다.
크고 작은 산을 가릴 것 없이 지금까지 무심코 오르락내리락 했던 산들이 무수한 어머니들이 되어 내 곁으로 다가왔다.
누군가는 이 더위에 무슨 등산 타령이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산에 오르는 것은 생명을 잉태하고 생명을 키우는 ‘생명의 젖줄’과의 인연임을 확인하니 즐거운 전율이 느껴진다.
옹졸한 내 품을 크게 키우고 좋은 것들은 물론 미움이나 원망, 분노까지도 다 담아내는 품을 가지고 싶다.
지금은 지리산을 다녀온 작은 후유증에 불편하지만 큰 지혜를 얻은 산행길이었으니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벌써부터 내년 지리산이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