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 목사님] 마음에 품은 우포
[한희철 목사님] 마음에 품은 우포
by 한희철 목사님 2018.09.05
유난히도 무더웠던 이번 여름,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그중 마음에 남을 일은 우포를 다녀온 일이겠다 싶습니다. 해마다 열리는 독서캠프가 우포 인근 마을에서 열렸는데, 이야기 손님으로 그곳을 찾으며 마음에 두었던 것이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우포에 다녀와야지 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진이나 방송으로만 대했을 뿐 직접 찾은 적이 없었습니다.
어디에나 자신이 살아가는 곳을 사랑하는 이들이 있어 그들을 만나는 것은 생이 우리에게 주는 좋은 선물이라 여깁니다. 수수한 옷차림에 넉넉한 웃음까지 흙을 닮고 농부를 닮은 정석중 목사님이 그랬습니다. 외진 시골마을에서 이웃들과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모습은 너무도 자연스러워서 어떤 어색함도 느낄 수가 없었습니다.
우포를 보고 싶어 하는 우리들을 위해 정목사님은 특별한 시간을 제안하였습니다. 이왕이면 새벽에 나가 우포의 일출을 보자는 것이었지요. 늦은 시간까지 이어지는 프로그램을 생각하면 무리한 일이었지만 이야기를 들은 우리가 기꺼이 동의를 했던 것은, 새벽 우포를 보는 설렘도 설렘이거니와 우포를 사랑하는 이와 함께 보는 기대가 더 컸기 때문이었습니다.
아직 채 동이 밝기 전에 일어나 정목사님이 몰고 온 트럭을 탔습니다. 정목사님은 널리 알려진 길이 아닌 자신이 알고 있는 길을 택했고, 트럭은 이내 비포장 길로 들어섰습니다. 새벽 우포는 우리에게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사뭇 마음이 설레었습니다.
운전을 하던 목사님이 길가에 서 있는 트럭을 보더니 차를 세웠습니다. 가까운 사람은 차를 보고서도 그가 곁에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었습니다. 정목사님의 생각은 틀리지가 않아 우리는 그곳에서 이인식 선생님을 만날 수가 있었습니다. 우포를 사랑하여 아예 삶의 거처를 우포로 옮겼다는 선생님은 우포에서 살아가는 왜가리와 황새를 꼭 닮아 있었습니다. 본 적 없지만 선생님이 복원을 힘쓰고 있는 따오기도 필시 선생님을 닮았겠다 싶었고요.
짧게 인사를 나누고 야트막한 언덕 위로 올랐던 것은 해가 떠오를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언덕 위에 올라 바라보는 우포는 신비 그 자체였습니다. 눈이 모자랄 만큼 펼쳐진 늪의 수면 위로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있었는데, 태고의 시간이 이러하지 않았을까 싶은 풍광이었습니다. 마침내 해가 떠오르자 태고의 시간 속으로 무엇 하나 소란함 없이 붉은 빛이 스며들었습니다. 무엇도 묻지 않고 모두를 받는 용납, 거룩한 순간이었습니다.
우포를 가장 의미 있게 만나는 방법은 맨발로 걷는 일이었습니다. 갈대와 억새 사이를, 방금 지나간 뭇 짐승이 남긴 더운 똥 사이를, 부지런히 거미줄을 치는 거미 사이를 우리는 맨발로 걸었습니다. 헤아릴 길 없을 만큼 긴 세월을 지내온 우포는 맨발로 걷는 우리를 말없이 받아 주었습니다.
견딘 만큼 비어지더라고, 아픈 만큼 맑아지더라고, 가장 오래 걸은 자가 가장 깊이 만난다고, 가장 오래 견딘 자가 가장 깊이 품는다는 말을 들려주었습니다. 가슴으로 듣는 우포의 말, 어느새 우포는 가슴으로 들어와 그윽한 늪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어디에나 자신이 살아가는 곳을 사랑하는 이들이 있어 그들을 만나는 것은 생이 우리에게 주는 좋은 선물이라 여깁니다. 수수한 옷차림에 넉넉한 웃음까지 흙을 닮고 농부를 닮은 정석중 목사님이 그랬습니다. 외진 시골마을에서 이웃들과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모습은 너무도 자연스러워서 어떤 어색함도 느낄 수가 없었습니다.
우포를 보고 싶어 하는 우리들을 위해 정목사님은 특별한 시간을 제안하였습니다. 이왕이면 새벽에 나가 우포의 일출을 보자는 것이었지요. 늦은 시간까지 이어지는 프로그램을 생각하면 무리한 일이었지만 이야기를 들은 우리가 기꺼이 동의를 했던 것은, 새벽 우포를 보는 설렘도 설렘이거니와 우포를 사랑하는 이와 함께 보는 기대가 더 컸기 때문이었습니다.
아직 채 동이 밝기 전에 일어나 정목사님이 몰고 온 트럭을 탔습니다. 정목사님은 널리 알려진 길이 아닌 자신이 알고 있는 길을 택했고, 트럭은 이내 비포장 길로 들어섰습니다. 새벽 우포는 우리에게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사뭇 마음이 설레었습니다.
운전을 하던 목사님이 길가에 서 있는 트럭을 보더니 차를 세웠습니다. 가까운 사람은 차를 보고서도 그가 곁에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었습니다. 정목사님의 생각은 틀리지가 않아 우리는 그곳에서 이인식 선생님을 만날 수가 있었습니다. 우포를 사랑하여 아예 삶의 거처를 우포로 옮겼다는 선생님은 우포에서 살아가는 왜가리와 황새를 꼭 닮아 있었습니다. 본 적 없지만 선생님이 복원을 힘쓰고 있는 따오기도 필시 선생님을 닮았겠다 싶었고요.
짧게 인사를 나누고 야트막한 언덕 위로 올랐던 것은 해가 떠오를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언덕 위에 올라 바라보는 우포는 신비 그 자체였습니다. 눈이 모자랄 만큼 펼쳐진 늪의 수면 위로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있었는데, 태고의 시간이 이러하지 않았을까 싶은 풍광이었습니다. 마침내 해가 떠오르자 태고의 시간 속으로 무엇 하나 소란함 없이 붉은 빛이 스며들었습니다. 무엇도 묻지 않고 모두를 받는 용납, 거룩한 순간이었습니다.
우포를 가장 의미 있게 만나는 방법은 맨발로 걷는 일이었습니다. 갈대와 억새 사이를, 방금 지나간 뭇 짐승이 남긴 더운 똥 사이를, 부지런히 거미줄을 치는 거미 사이를 우리는 맨발로 걸었습니다. 헤아릴 길 없을 만큼 긴 세월을 지내온 우포는 맨발로 걷는 우리를 말없이 받아 주었습니다.
견딘 만큼 비어지더라고, 아픈 만큼 맑아지더라고, 가장 오래 걸은 자가 가장 깊이 만난다고, 가장 오래 견딘 자가 가장 깊이 품는다는 말을 들려주었습니다. 가슴으로 듣는 우포의 말, 어느새 우포는 가슴으로 들어와 그윽한 늪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