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은 대표] 두만강 푸른 물아 압록강 넓은 물아
[김재은 대표] 두만강 푸른 물아 압록강 넓은 물아
by 김재은 대표 2018.09.13
오랫동안 함께 하고 있는 ‘행복을 발견하고 함께 나누는 모임’에서 지난주 중국동북3성 인문역사 행복여행을 다녀왔다. 목단강에서 시작하여 발해의 수도였던 상경용천부, 도문과 연길, 이도백하와 백두산, 통화, 고구려 국내성의 집안, 단동을 거쳐 대련, 여순까지 2,000km 가까운 긴 여정이었다.
첫째날 저녁 무렵 도문에서 두만강을 만났다. 강 건너는 함경도 온성, 물끄러니 바라본 우리의 산하가 어둠 속에 묻혀가고 있었다.
넷째날 곡절 끝에 다다른 집안(지안)에선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게 있었다. 저 멀리 산 중턱의 연기가 피어오르는 공장의 굴뚝, 점심을 하면서 들은 현지 조선족 여인은 그곳이 평안도 만포라고 했다. 굴뚝이 있는 산 아래로 유유히 흘러가는 물줄기, 압록강이었다.
다음날 도착한 단동 또한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 신의주와 이웃하고 있다.
그런데 두만강 건너 온성도, 압록강 너머 만포와 신의주도 여느 곳과 다를 게 없이 거기가 거기인데 나에게는 어찌나 다르고 생경하게 느껴지던지. 곰곰이 생각해본다.
산하는 말없이 여여한데 내 마음속에 분단의식과 선입견이 가득함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도 그럴 것이 분단상황에서 태어나 오랜 시간 그런 교육을 받았고, 분단으로 인한 갈등의 사회에서 살아오다 보니 ‘이상한 내 모습’이 정상으로 여겨지는 삶을 살아온 탓이리라.
그냥 그대로 느끼고 즐기면 될 것인데 우리와 뭔가 다르고, 거리감이 있는 듯이 행동하는 모습에서 ‘의식의 성’에 갇힌 우리네 삶이 그대로 오버랩되었다.
거기에 나만이 옳다, 우리가 맞다는 생각까지 가세하여 생각과 행동의 자유를 스스로 옥죄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려왔다.
늘 나의 안경으로만 세상을 바라보며 살아온 긴 세월이 야속하기도 하고.
집안의 압록강에서 스피드 보트를 타는 동안 100미터 앞 북한 만포땅, 한 여인이 자전거를 타고 가고, 가족인듯한 사람들이 짐을 실은 리어커를 끌고 가고 있다. 거기엔 거기 나름대로의 일상이 있었다. 이상하게, 신기한 듯 바라보는 내가 세상의 이방인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단동의 압록강에서도 그랬다. 단동의 압록강도 신의주의 압록강도 사실은 하나였다.
물이 하나인데 우리의 생각이 둘이었다. 그러다 보니 나는 중국도 북한도 아닌 제3자가 되어 덩그러니 강물 위에 떠돌고 있었다. 압록강은 말이 없었다. 이념도 국가도 편견도 고집도 없이 그저 흘러가고 있을 뿐이었다.
그나저나 이게 얼마만인가. 초등학교 시절 지도책에서 만났던 온성, 만포, 신의주 등이 두만강, 압록강 너머로 내 앞에 오롯이 나타나다니. 그리운 우리 땅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그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고 일상은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그 사람들과 일상들이 모이고 엉겨서 문화가 되고 역사가 된 것이 아니던가.
새롭고 낯선 환경 속에서 오히려 지금까지 눈에 잘 띄지 않았던 나의 일상의 모습을 발견하다니…. 이번 여행은 ‘낯섬속에서 찾은 일상’이 되었다.
아직 여독이 채 풀리지 않았는데 벌써 그리움이 가득하다.
두만강아, 압록강아! 보고 싶다!!!
첫째날 저녁 무렵 도문에서 두만강을 만났다. 강 건너는 함경도 온성, 물끄러니 바라본 우리의 산하가 어둠 속에 묻혀가고 있었다.
넷째날 곡절 끝에 다다른 집안(지안)에선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게 있었다. 저 멀리 산 중턱의 연기가 피어오르는 공장의 굴뚝, 점심을 하면서 들은 현지 조선족 여인은 그곳이 평안도 만포라고 했다. 굴뚝이 있는 산 아래로 유유히 흘러가는 물줄기, 압록강이었다.
다음날 도착한 단동 또한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 신의주와 이웃하고 있다.
그런데 두만강 건너 온성도, 압록강 너머 만포와 신의주도 여느 곳과 다를 게 없이 거기가 거기인데 나에게는 어찌나 다르고 생경하게 느껴지던지. 곰곰이 생각해본다.
산하는 말없이 여여한데 내 마음속에 분단의식과 선입견이 가득함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도 그럴 것이 분단상황에서 태어나 오랜 시간 그런 교육을 받았고, 분단으로 인한 갈등의 사회에서 살아오다 보니 ‘이상한 내 모습’이 정상으로 여겨지는 삶을 살아온 탓이리라.
그냥 그대로 느끼고 즐기면 될 것인데 우리와 뭔가 다르고, 거리감이 있는 듯이 행동하는 모습에서 ‘의식의 성’에 갇힌 우리네 삶이 그대로 오버랩되었다.
거기에 나만이 옳다, 우리가 맞다는 생각까지 가세하여 생각과 행동의 자유를 스스로 옥죄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려왔다.
늘 나의 안경으로만 세상을 바라보며 살아온 긴 세월이 야속하기도 하고.
집안의 압록강에서 스피드 보트를 타는 동안 100미터 앞 북한 만포땅, 한 여인이 자전거를 타고 가고, 가족인듯한 사람들이 짐을 실은 리어커를 끌고 가고 있다. 거기엔 거기 나름대로의 일상이 있었다. 이상하게, 신기한 듯 바라보는 내가 세상의 이방인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단동의 압록강에서도 그랬다. 단동의 압록강도 신의주의 압록강도 사실은 하나였다.
물이 하나인데 우리의 생각이 둘이었다. 그러다 보니 나는 중국도 북한도 아닌 제3자가 되어 덩그러니 강물 위에 떠돌고 있었다. 압록강은 말이 없었다. 이념도 국가도 편견도 고집도 없이 그저 흘러가고 있을 뿐이었다.
그나저나 이게 얼마만인가. 초등학교 시절 지도책에서 만났던 온성, 만포, 신의주 등이 두만강, 압록강 너머로 내 앞에 오롯이 나타나다니. 그리운 우리 땅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그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고 일상은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그 사람들과 일상들이 모이고 엉겨서 문화가 되고 역사가 된 것이 아니던가.
새롭고 낯선 환경 속에서 오히려 지금까지 눈에 잘 띄지 않았던 나의 일상의 모습을 발견하다니…. 이번 여행은 ‘낯섬속에서 찾은 일상’이 되었다.
아직 여독이 채 풀리지 않았는데 벌써 그리움이 가득하다.
두만강아, 압록강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