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은 대표님] 웃기고 있네 너나 잘해
[김재은 대표님] 웃기고 있네 너나 잘해
by 김재은 대표님 2018.10.25
얼마 전 어느 날이었다.
지하철을 타고 가는데 주위에 배가 부른 30대 여인이 있는데도 임산부 배려석에 태연히 앉아있는 젊은 여성이 있었다. 주위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에서 오히려 당당함마저 묻어났다.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거기에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몰라 어찌하지 못하는 내가 보였다.
또 하나, 30년도 넘은 이야기이다.
치열하게 살던 20대, 흡연이 어디에서든 제약 없이 일상화되어 있던 시절, 평소 정의를 부르짖으며 삶을 걸고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하던 친구가 피던 담배꽁초를 길거리에 아무 생각 없이 버리던 모습을 보며 혼란스러워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이뿐이 아니다.
일상 속에서 벌어지는 이와 비슷한 예는 수도 없이 많다. 얼마 전 주말 여의도 불꽃놀이 관람 후 남겨진 산더미 같은 쓰레기에 ‘실종된 시민의식’으로 뉴스가 되기도 했다.
지금이야 찾아보기 어렵지만 한 달에 한 번 정기적으로 마을 주민들이 함께 모여 청소를 하던 시절이 있었다. 빈곤했기에 먹는 것도, 쓸 물건도 풍족하지 않아 청소할 게 별로 없었지만 우리는 깨끗한 동네를 위해 기꺼이 함께 하곤 했다.
세상은 좋아지고 부족한 게 없는 풍요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우리네 일상은 눈에 거슬리고 짜증이 날 만한 꺼리들이 즐비하다. 나만 편하면 된다는 생각, 나의 집만 깨끗하면 된다는 의식이 나도 모르게 스며든 탓일 것이다.
여기서 누구를 탓하고 공중의식 운운하며 도덕군자 행세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 공범(?) 중에 아마도 내가 분명히 들어 있거나 나는 아니라고 큰 소리를 칠 형편이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세상의 사람들과 다른 사람인 양 독야청청하는 모습은 함부로 담배꽁초를 버리는 사람과 다를 게 뭐가 있을까.
공중도덕의 실종, 공공의식의 부재 등 그럴싸한 이름을 붙이며 누군가를 비난하며 탓하는 모습은 쉽게 눈에 띄지만 성숙한 문화시민으로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행동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많은 사람들의 공공의식이 부족한 것이 어쩌면 그럴 수밖에 없는 어떤 마음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 그래서 그들을 비판하기에 앞서 ‘나는 어떠한가’를 돌아보는 것 말이다. 나의 변화를 도외시한 어떤 것도 세상 속에서 영향력을 갖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어쩌면 성숙한 문화의식은 여기서 출발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내로남불을 하거나 언짢은 뉴스에 손가락질 하기 보다는 나도 당사자가 되어 내 삶을 살피는 것, 그런 자세가 함께 사는 세상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지 않을까.
작은 것 하나를 무시할 때 때로는 엄청난 댓가로 돌아오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함께 살아가는 세상 속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오늘 하루가 모여 내 인생이 되듯이 지금 나의 행동 하나, 습관 하나가 낳는 파급효과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클 수도 있다.
다만 좋은 효과를 만들어 낼 수 있도록 하는 나의 선택과 노력이 있을 뿐이다.
모든 것은 수많은 나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 모두 ‘너나 잘해’의 ‘너’가 기꺼이 되자고 이 연사는 외쳐본다.
지하철을 타고 가는데 주위에 배가 부른 30대 여인이 있는데도 임산부 배려석에 태연히 앉아있는 젊은 여성이 있었다. 주위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에서 오히려 당당함마저 묻어났다.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거기에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몰라 어찌하지 못하는 내가 보였다.
또 하나, 30년도 넘은 이야기이다.
치열하게 살던 20대, 흡연이 어디에서든 제약 없이 일상화되어 있던 시절, 평소 정의를 부르짖으며 삶을 걸고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하던 친구가 피던 담배꽁초를 길거리에 아무 생각 없이 버리던 모습을 보며 혼란스러워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이뿐이 아니다.
일상 속에서 벌어지는 이와 비슷한 예는 수도 없이 많다. 얼마 전 주말 여의도 불꽃놀이 관람 후 남겨진 산더미 같은 쓰레기에 ‘실종된 시민의식’으로 뉴스가 되기도 했다.
지금이야 찾아보기 어렵지만 한 달에 한 번 정기적으로 마을 주민들이 함께 모여 청소를 하던 시절이 있었다. 빈곤했기에 먹는 것도, 쓸 물건도 풍족하지 않아 청소할 게 별로 없었지만 우리는 깨끗한 동네를 위해 기꺼이 함께 하곤 했다.
세상은 좋아지고 부족한 게 없는 풍요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우리네 일상은 눈에 거슬리고 짜증이 날 만한 꺼리들이 즐비하다. 나만 편하면 된다는 생각, 나의 집만 깨끗하면 된다는 의식이 나도 모르게 스며든 탓일 것이다.
여기서 누구를 탓하고 공중의식 운운하며 도덕군자 행세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 공범(?) 중에 아마도 내가 분명히 들어 있거나 나는 아니라고 큰 소리를 칠 형편이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세상의 사람들과 다른 사람인 양 독야청청하는 모습은 함부로 담배꽁초를 버리는 사람과 다를 게 뭐가 있을까.
공중도덕의 실종, 공공의식의 부재 등 그럴싸한 이름을 붙이며 누군가를 비난하며 탓하는 모습은 쉽게 눈에 띄지만 성숙한 문화시민으로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행동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많은 사람들의 공공의식이 부족한 것이 어쩌면 그럴 수밖에 없는 어떤 마음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 그래서 그들을 비판하기에 앞서 ‘나는 어떠한가’를 돌아보는 것 말이다. 나의 변화를 도외시한 어떤 것도 세상 속에서 영향력을 갖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어쩌면 성숙한 문화의식은 여기서 출발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내로남불을 하거나 언짢은 뉴스에 손가락질 하기 보다는 나도 당사자가 되어 내 삶을 살피는 것, 그런 자세가 함께 사는 세상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지 않을까.
작은 것 하나를 무시할 때 때로는 엄청난 댓가로 돌아오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함께 살아가는 세상 속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오늘 하루가 모여 내 인생이 되듯이 지금 나의 행동 하나, 습관 하나가 낳는 파급효과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클 수도 있다.
다만 좋은 효과를 만들어 낼 수 있도록 하는 나의 선택과 노력이 있을 뿐이다.
모든 것은 수많은 나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 모두 ‘너나 잘해’의 ‘너’가 기꺼이 되자고 이 연사는 외쳐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