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이미지

오피니언

오피니언

[강판권 교수님] 가을 하늘을 품은‘지리산천년송’

[강판권 교수님] 가을 하늘을 품은‘지리산천년송’

by 강판권 교수님 2018.10.29

천연기념물은 하늘이 낳는다. 우리나라 나무 천연기념물 중 소나무가 가장 많다. 소나무 천연기념물이 가장 많은 것은 그만큼 우리나라 사람들이 소나무를 적극적으로 보호했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도 천연기념물이 남아 있다는 것만 해도 가슴 벅찬 일이다. 우리나라 소나무 천연기념물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았던 충청북도 괴산군 삼송리의 왕소나무는 돌아가셨다. 내가 가장 최근에 만난 천연기념물 소나무는 전라북도 남원의‘지리산천년송’(천연기념물 제424호)이다. 구름이 누워 있는 와운마을의 지리산천년송은 500살 정도의 나이지만 천년만큼 오래 살고 있다는 뜻이다.
지리산천년송은 다른 곳의 천연기념물 소나무와 달리 한 번 만나는데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와운마을까지 자동차로 가지 않는 한 3킬로미터 거리를 걸어서 가야 하기 때문이다. 마을 사람과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소나무를 만나기 위해서는 걸어가야 한다. 따라서 지리산천년송은 다른 어떤 지역의 천연기념물보다 특별한 대우를 받고 있다. 이런 점에서 지리산천년송은 우리나라에서 천연기념물을 어떻게 관리하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지리산천년송으로 가는 길은 지리산 뱀사골이다. 대학원 시절 처음 찾았던 뱀사골을 30년이 지난 뒤 소나무를 만나러 가는 길에서 찾으니 정말 감회가 깊었다. 오로지 한 그루 소나무를 만나기 위해 길을 떠나는 시간만큼 기분 좋은 일도 드물기 때문이다. 특히 3킬로미터를 걸으면서 만끽한 풍경은 소나무를 만나는 것만큼이나 행복한 시간이었다. 지리산 뱀사골 계곡의 맑은 물소리를 닮은 나무들의 삶을 만나는 시간은 그동안 수 없이 나무를 만났던 순간과 달랐다. 나 외에도 지리산천년송을 만나러 가는 사람들이 아주 많았다. 그래서 와운마을 산자락에 살고 있는 두 그루의 소나무는 많은 사람들의 방문으로 피곤할 가능성이 아주 높다. 특히 아무 예고도 없이 나무를 안고 사진을 찍는 사람들의 예의 없는 행동은 나무의 미래를 아주 어둡게 하는 요인이다.
지리산천년송을 만나러 오는 사람들의 발길이 잦을수록 소나무의 삶은 힘들 수밖에 없다. 간절한 마음으로 찾는 사람만이 아니라 그저 호기심으로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많을수록 천년의 소나무는 생명이 줄어든다. 이곳의 소나무를 찾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TV에서 몇 차례 방영했기 때문이다. 와운마을 사람들은 이곳 소나무를 신목으로 모시고 있다. 그러나 이 나무를 찾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목이 아니라 그저 볼거리 중의 하나로 여길 뿐이다. 이곳의 소나무가 천년의 세월 동안 살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신목에 대한 예의가 절실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무에 대한 예의를 모른다. 평생 배운 적이 없기 때문이다. 찾는 사람들에게 소나무에 대한 예의를 지도할 사람은 마을 사람들 중에 선정할 필요가 있다. 이곳 마을 사람들이야말로 이곳의 소나무를 가장 사랑할 뿐 아니라 예의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 그루의 나무에 대한 예의는 곧 한 존재에 대한 태도를 의미한다. 따라서 천연기념물 소나무에 대한 예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존재에 대한 수준을 알 수 있는 기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