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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섭 시인님] 아이를 인간 로봇으로 키울 건가

[이규섭 시인님] 아이를 인간 로봇으로 키울 건가

by 이규섭 시인님 2018.11.02

단순한 게 좋다. 복잡한 건 딱 질색이다. 대화도 빙빙 에둘러 하는 것 보다 직설적인 게 편하다. 세상살이는 단순하지 않기에 피로감이 쌓인다. 생활의 편의를 위해 만든 기기가 진화를 거듭할수록 불편하다. 모바일이 없던 시절에도 약속을 정하고 만나며 유대관계를 잘 이어왔다. 지인들의 전화번호 수십 개는 줄줄 외웠다. 지금은 가족 휴대폰 번호조차 단축키가 해결해주니 기억할 필요가 없게 됐다. 집 전화번호가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기억력이 망가져간다. 카톡이나 문자 메시지가 없던 시절, 편지로 안부를 전하고 급하면 전보를 치며 살아도 삶은 둥글둥글 잘 굴러갔다.
NIE(신문 활용 교육) 강사를 시작할 무렵, 신문기사를 캡처하고, 포토샵을 하고 PPT(파워포인트)를 만들면서 스스로가 대견하여 어깨가 으쓱했다. 활자에서 영상으로 미디어교육이 확장되면서 프리젠테이션 기법이 다채로워졌다, 변화의 속도가 놀랍고 따라잡기 어려워 허우적거린다. “음메∼기죽어”다. 휴대폰을 활용하고 다루는 학생들의 솜씨는 나의 스승이다.
요즘은 AI(인공지능) 스피커가 집 안에 들어와 일상을 바꾸고 있다. 부부만 사는 친구는 시집간 딸이 심심할 때 말동무하라며 AI 스피커를 사줬다고 은근히 자랑한다. 노래도 들려주고 잊기 쉬운 일정도 챙겨주며 대화가 통해 신통방통 즐겁게 이용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AI 의존도가 높아 일상의 지배를 받는 것 같아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가뜩이나 뜸해진 노후의 부부 대화가 부쩍 줄어든 게 결정적 계기가 됐다.
2010년 이후 태어난 ‘알파 세대’ 부모들은 자녀 교육을 위해 AI 스피커를 구입하는 경향이 많다고 한다. 스마트폰 영상처럼 아이들에게 자극적이지 않기 때문에 선호한다. AI 스피커는 신데렐라 동화를 척척 읽어 준다. ‘핑크퐁’ 동요를 따라 부르며 영어 단어를 외운다. 엄마 대신 숙제를 해결해주는 가정교사 구실도 한다.
아이들이 AI 스피커에 빠져들면서 부작용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영국에서는 생후 18개월 된 아이가 말을 배우기 시작하며 첫마디가 엄마 아빠가 아닌 ‘알렉사’라고 하여 화제가 됐다는 보도다. 알렉사는 미국 IT기업이 개발한 AI 스피커 에코에 내장된 AI 이름이다. 평소 부부는 “알렉사! 알렉사!”를 부르며 임무를 부여했다. 미국에서도 돌쟁이 아기가 엄마(Mama) 보다 ‘알렉사’라는 어휘를 먼저 배웠다는 보도가 나왔다.
AI 스피커 사용자는 늘고 기능은 갈수록 다양해졌다. 아이들이 AI 스피커랑 더 친하다 보니 엄마 아빠와 멀어진다. 미국에서는 아이와 부모 간 애착관계를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할 가능성이 제기됐다. 아이들의 정서에 나쁜 영향을 끼칠 것은 뻔하다. 음성기반 기기들이 수집하는 개인 데이터에 쉽게 노출될 수도 있다. 반려견이 가족 대접받듯이 AI 스피커가 어린이 친구로 자리매김 되는 날도 멀지 않았다.
어린이와의 소통엔 눈짓 손짓 표정이 중요하다. 엄마 아빠와도 눈이 마주쳐야 교감이 이루어진다. 한참 뛰어놀아야 할 시기에 TV와 휴대폰에 눈이 팔린 것도 모자라 AI 스피커에 빠져 ‘인간 로봇’이 될까 걱정된다.